:: 오늘날 '비디오게임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타리(ATARI)의 창시자 놀란 부쉬넬 ::

 
 
(지난 시간에 이어서)
 
 
  

놀란 부쉬넬(Nolan K. Bushnell, born February 4, 1943)
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1960년대 중반, 그가 전자공학도로 공부중이던 유타 대학교의 캠퍼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시 대학가를 휩쓸던 컴퓨터 게임 스페이스워!(Spacewar!)와의 첫 만남이 게임 산업에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을테니까요.
  
"저는 스페이스워를 처음 보자마자 단번에 매료 되었습니다. 이 게임이 재밌을 뿐 아니라 여기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았기 때문이었죠. 게임기를 하나 만들어서 시장에 출시하면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계산해봤지만 바로 생각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당시 IBM 7900과 같은 컴퓨터가 너무나 비싸다는게 문제였습니다."
 
대학에 졸업한 뒤 놀란 부쉬넬은 1969년에 전자회사 Ampex에 입사하게 됩니다. 스탠포드 AI 연구실에서 일하는 지인을 통해 스페이스워를 함께 즐기면서 이 게임이 어떤 원리로 구동되는지 자세하게 듣게 되면서 숨어있던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전자 게임의 비즈니스 잠재력이 명확하고 성공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스페이스워'와 같은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Ampex에서 함께 일하던 Ted Dabney와 함께 프로젝트에 착수합니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당시 미니컴퓨터로 유명하던 Data General을 이용해서 5개 이상의 합본 게임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구현하면서 이를 위한 생산 단가를 맞추는데 상당히 곤욕을 겪었습니다.[각주:1] 오늘날은 하드웨어 생산 초기에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거나 적자를 내면서까지 가격을 책정하더라도 게임소프트 판매를 통해 이를 커버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드웨어 생산단가가 낮아질때까지 가격을 유지할 수 있지만, 콘솔게임 산업 태동기에는 게임의 수가 거의 없다보니 하드웨어 하나 당 소프트웨어 장착률이 거의 희박한 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은 일체형 아케이드 게임기였죠. 복수의 게임을 모두 담기엔 하드웨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높았습니다.
  
Data General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한 놀란 부쉬넬은, 대신에 $4,000 비용의 하드웨어를 조합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결국 게임은 하나로 줄었고, 2인용이 아닌 1인용 게임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스페이스워와 같이 로켓을 조종해서 미사일을 쏘고 피하고 슈팅게임, '컴퓨터 스페이스(Computer Space)'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습니다. 좌우로 움직임을 전환하는 버튼과 미사일을 발사하는 버튼 2개로 컨트롤할 수 있었고 효과음도 지원하고 있었죠.
  

:: 놀란 부쉬넬은 1971년에 동전 투입형 아케이드 게임 'Computer Space'를 출시한다. ::
 
컴퓨터 스페이스는 1971년 11월, 전자회사 Nutting Associates를 통해 출시됩니다. 놀란 부쉬넬이 평소 들리는 치과 담당의사를 통해 Nutting Associates의 관계자와 연결된 것은 상당히 재미난 일화로 남고 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1년 넘게 스폰서를 찾아 고생하던 랄프 베어의 브라운 박스를 생각해본다면 시작부터 행운이 따라준 것 같습니다. =)
  
컴퓨터 스페이스는 최초의 동전 투입형 아케이드 게임이라는 점에서 아케이드 게임계에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최초의 게임' 타이틀을 가지고 가늠하는게 사실상 무의미 하지만 상업용 게임 자체로만 본다면 놀란 부쉬넬이 랄프 베어의 오디세이보다 1년 더 앞선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시와 함께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했지만 컴퓨터 스페이스는 1,500대 판매량에 30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한게 고작이었습니다. 분명 획기적이고 재미있는 게임기였지만 대중적으로 즐기기엔 조작법도(2버튼) 게임도 다소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후에 출시한 퐁(PONG)의 폭발적인 인기를 감안한다면, 2인용이 아니라 혼자 즐기는 1인용이라는 점도 옥의 티가 아니었을까 예상하게 됩니다.
  

:: 컴퓨터 스페이스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Soylent Green (1973) ::

비록 자신의 첫 게임기는 실패했지만 놀란 부쉬넬은 이를 계기로 소중한 경험을 쌓게 됩니다. Nutting Associates는 마케팅에 소홀했던 점을 생각하면서 차기 게임기는 보다 더 큰 제조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동시에, 자신이 직접 회사를 창업해야 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바둑 애호가였던 놀란 부쉬넬은 회사명을 바둑에서 단수(單手)의 일본어인 아타리(ATARI)라는 이름으로 Ted Dabney와 함께 창업합니다. 그들의 첫 창립멤버는 Ampex시절부터 함께 일하던 앨런 알콘(Allan Alcorn)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스타트업한 그들은 초반에는 라스베가스의 슬롯 머신 등을 만들던 Bally Technology와 첫계약을 맺습니다.
  

 
차기 비디오 게임에 대해 고민하던 그들에게 1972년 5월,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켈리포니아 버링게임에서 마그나복스의 오디세이 시연회에 참석한 놀란 부쉬넬과 앨런 알콘은 오디세이의 핑퐁(Ping-Pong)게임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고, 아케이드 게임 퐁(PONG)의 개발에 착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 놀란 부쉬넬은 이 퐁(PONG)이 게임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만큼, 수년간 특허 소송으로 로열티 문제에 시달리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 사명으로 결정할만큼, 놀란 부쉬넬에게 바둑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

 
  
[참고 문헌]
  
High score!: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http://www.bmigaming.com/videogamehistory.htm
http://www.arcade-museum.com/game_detail.php?game_id=7381
http://www.cedmagic.com/history/computer-space.html
  


  1. 프로젝트 진행당시, 생산 단가를 맞추는 과정에서 놀란 부쉬넬은 그 당시 심정은 정말 지옥같았다(Hell)고 밝히기도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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