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urs
Happiness Colours by Camdiluv ♥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경제학원론을 살펴보면 GNP(국민 총생산)와 GDP(국내 총생산)로 행복(Happiness)지수를 측정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GNP와 GDP의 수치가 높은 국가는 그만큼 행복지수도 높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죠. 이 경제학 관점에서 본 행복은 시대를 거듭하면서 기존의 자본주의에서 이어진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경제와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과 함께 이 글을 작성하는 2011년 연말, 그 여느때보다 대한민국 청소년의 학교폭력, 왕따 문제로 이어지는 자살 이슈로 시끄러운 요즘에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그만큼 더 행복해졌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2011년 마지막 포스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올 한 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19세기 영국이 낳은 사상가 존 러스킨(John Ruskin)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Unto This Last) 입니다. 사실 저는 경제학이라는 학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이 책이 올해 가장 큰 감명을 받았던 이유는 자본주의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에 속해있는 제 고정관념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경제학이란 철저하게 손익과 형평성을 따지는 경제학이 아니라 사랑과 온정으로 '생명의 부(富)'를 이루고자 하는 생명의 경제학이었습니다.
 
존 러스킨이 주장하는 이 생명의 경제학의 핵심은 한 성경 구절로부터 시작 됩니다. 바로 성경 말씀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원 일꾼>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그 주인은 하루 품삯으로 1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오전 9시쯤 돼 그가 나가 보니 시장에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너희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도 포도원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은 12시와 오후 3시쯤에도 다시 나가 또 그렇게 했다.

그리고 오후 5시쯤 다시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서 빈둥거리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습니다’고 대답했다. 주인이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내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고 말했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이 관리인에게 말했다. ‘일꾼들을 불러 품삯을 지불하여라. 맨 나중에 고용된 사람부터 시작해서 맨 처음 고용된 사람까지 그 순서대로 주어라.’ 오후 5시에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 각각 1데나리온씩 받았다. 맨 처음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는 자기들이 더 많이 받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각 사람이 똑같이 1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들은 품삯을 받고 포도원 주인을 향해 불평했다. ‘나중에 고용된 일꾼들은 고작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고되게 일한 우리와 똑 같은 일당을 주시다니요?’ 그러자 포도원 주인이 일꾼 중 하나에게 대답했다. ‘여보게 친구, 나는 자네에게 불의한 것이 없네. 자네가 처음에 1데나리온을 받고 일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자네 일당이나 받아가게. 나중에 온 일꾼에게 자네와 똑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네. 내가 내 것을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가? 아니면 내가 선한 것이 자네 눈에 거슬리는가?’

이처럼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되고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될 것이다.”

(마태복음 20장 1-16절)
 
포도원 주인은 하루에 뜨거운 뙤약볕에서 10시간을 일한 사람이나 1시간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은 일당을 줍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형평성에 따르면 포도원 주인의 처사는 조금도 합리적이지도 않고 불공평 합니다. 아무리 기독교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저라도 포도원 주인의 행동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철저한 손익과 형평성을 밑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 발전한 신자유주의에 머물러있는 한, 경제가 발전하는 나라일 수록 그 결과는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 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이런 부는 결코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부자가 되는 기술은 절대적으로나 궁극적으로나 자신을 위해 많은 재산을 모으는 기술일 뿐만 아니라, 이웃이 자기보다 적게 소유하도록 획책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자신만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의 불평등을 확립하는 기술’인 것이다.”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거절하고 있는 것은, 식량만이 아니다. 지혜도 거절하고, 미덕도 거절하고, 구원조차도 거절하고 있다.”
 
존 러스킨은 사랑과 온정이야말로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무려 150년 전에 말이죠. 인간 관계는 손익과 형평성으로 풀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도 예시로 든 '빵 한조각 밖에 남지 않은 굶주리는 가정에 엄마와 자녀들의 이해관계'가 경제학이 말하는 손익과 형평성으로 계산이 될까요? 우리 인간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온정과 사랑이야 말로 경제학을 이루는 근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생명이 곧 부(富)다. 이 생명은 사랑과 환희와 경의가 모두 포함된 총체적인 힘이다. 가장 부유한 국가는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국민을 길러 내는 국가이고, 가장 부유한 이는 그의 안에 내재된 생명의 힘을 다하여 그가 소유한 내적, 외적 재산을 골고루 활용해서 이웃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별나라에서 온 경제학이라고 생각될지 모르나, 사실 이 경제학이야말로 지금까지 존재해 온 유일한 경제학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중략)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국민을' 길러 내는 경제학이라 했는데, 과연 '고귀함'과 '다수'가 양립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믿는다. 양립할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상호 공생하는 관계라고 믿는다.”
 
러스킨의 경제학 이론이 너무 이상적이었기에 그당시 사회주의자라고 오해 받으며 오래동안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러스킨의 이상과 이론이 현실이 되어가는 국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해오던 선진국들이 하나둘씩 무너져가는 가운데 행복한 국민을 길러내는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의 정책이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는 점도 그렇고, 아시아에서도 국가총행복(GNH)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부탄'과 같은 나라가 그 예입니다. 특히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최대 다수의 행복한 국민을 만들기 위해 정책적으로 근로자들의 교육과 훈련에 집중하며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국가 예산에 교육과 복지에 들어가는 비중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과도한 세금에도 만족하며 납세를 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국가가 그만큼 투명하고 국민들의 안정을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실업을 하더라도 사회에서 실업보험이 넉넉히 지급되는데다, 기술 클래스 별로 나눠서 동일노동-동일임금 정책을 지원하는 덴마크 같은 국가에서는 실업을 하게 되면 전국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직업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아 기술 승급을 높인 뒤 오히려 높은 임금으로 노동을 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열리게 됩니다. 기업 역시 동일한 임금으로 과잉고용 문제를 겪지 않는데다 고용에도 탄력성을 얻게되어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공산국가들처럼 일 하는 성취감과 욕구가 없어 결과적으로 국가의 생산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겁니다. 확실히 말할 수 있지만 러스킨의 이론은 사회주의와 다릅니다. 모두에게 균등한 임금으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노동 분야에 마땅하고 바람직한 제도를 적용해서 각 노동 분야마다 고정된 임금을 규정하되, 유능한 노동자는 계속 고용되고 무능한 노동자는 고용되지 않도록 운영해야 한다. 반면 이치에 어긋나 거스른 파괴적인 노동 제도는 무능한 노동자가 반값에 일자리를 잡아 유능한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혹은 가격에 대해 출혈경쟁을 펼쳐 유능한 노동자로 하여금 부당한 임금을 받고 일하도록 조장한다. 동일한 노동 분야별 임금의 평등화야말로 최단 시간에 최단 거리로 이르는 길을 개척해서 도달해야 할 우리의 첫 목적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요? 실업율을 낮추기 위해 낮은 임금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정규직 및 고용주와의 갈등을 빚게된 비정규직 문제만해도 그렇고, 그 밖에 여러가지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시도하며 노력을 거듭해도 해결책이 쉽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갖는 한계라는 것이 오늘날의 주장인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이쯤에서 줄일까 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같은 비전공자라도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하며, 마지막으로 러스킨이 밝히는 '진정한 부(富)와 부자'에 대한 생각을 여러분도 한 번 되짚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사회에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탄탄한 재력을 갖춘 사람 중에 검소하고, 주위의 인정을 받고, 근면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누리고 있는 삶의 희락이 과연 어느 정도인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본보기가 될 인물들은 세상에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알려지는 여부는 하늘의 뜻에 맡겨둔 채, 행복한 인생을 살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부(富)보다는, 소박한 기쁨을 추구하고, 보다 높은 액수의 재산보다는 보다 깊은 천국의 보물을 추구하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재산목록 제1호로 삼고, 자만이 아닌 자존감이 높고, 화평과의 잔잔한 사귐을 통해 스스로를 존귀하게 높이는 그런 사람들이다”
 
2012년도에는 대한민국에 이렇게 사랑과 온정이 넘치는 부자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간 우리나라도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국민을 길러내는 부유한 국가가 되리라 믿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
 
추가로,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지 2년이나 지났지만 블로그를 통해 책을 추천해주신 최동석 교수님께 이 글을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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