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대하역사장편'소설'입니다. (진수의 삼국지정사를 기준으로 본다면 70%는 사실이고, 30%정도는 작가의 픽션이 가미되었다고 합니다.) 무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에서 겨우 100년 남짓의 짧은 후한말 시대지만 이만큼 재밌고 흥미로운 역사도 드물 겁니다. (물론 이를 환상적으로 재해석한 나관중이 대단한 거겠죠) 그 매력 덕분에 오늘날 삼국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만큼, 게임에서도 빠질 수 없는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지금은 메이저 게임회사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염료[각주:1]를 취급하는 회사였던 코에이(KOEI)가 삼국지와 함께 일본의 전국시대를 바탕으로 만든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와 '신장의 야망'으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80~90년대의 일본 PC게임 업계는 그야말로 코에이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이 각광받던 시대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 게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삼국지2. 칸노요코의 첫 게임 OST 참가작인 점은 지금도 신선하다 ::

하지만 199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게임업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하드웨어의 발전으로 3D그래픽 퍼포먼스를 앞세운 형태의 게임들이 점점 주류로 자리 잡아가면서 코에이도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코에이가 쌓아 온 이미지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들이었습니다. 물론 게임회사가 일정 장르에만 얽매일 수는 없겠지만, 무턱대고 다른 장르로 넘어가기엔 큰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죠.


:: 그래서 나온 결론은 신규 개발팀의 창설 ::

# 오메가포스(ω-Force)의 탄생


코에이의 대표이자 'A KOU SHIBUSAWA PRODUCTION'을 총괄하는 시부사와 코우[각주:2]는 자신의 팀이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보다는 팀을 하나 결성시켜서 개발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토모이케 타카즈미(진삼국무쌍4까지 총괄한 프로듀서)사단의 오메가포스(ω-Force)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첫 작품으로 3D퍼포먼스를 앞세워서 대전액션 장르의 삼국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이 1997년에 PS로 출시된 삼국무쌍(Dynasty Warriors)입니다.

당시 아케이드 게임은 남코의 철권(Tekken)과 세가의 버추어파이터(Virtua Fighter)가 3D대전액션게임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철권2와 철권3가 PlayStation으로 초월이식되면서 환호를 받던 분위기였죠. 이런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서 3D대전액션게임의 주류로 참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야심차게 시작한 삼국무쌍. 하지만 시작은 너무나 미약하고 처참했다 ::

이 게임은 14명의 무장들이 등장하며, 숨겨진 캐릭터인 '오다 노부나가'를 추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 퍼포먼스로 본다면 삼국무쌍은 그다지 뒤쳐질 게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드물게 PS에서 60프레임으로 구동되며 굉장히 부드러운 게임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게임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3D 대전액션게임은 아케이드 시장에만 정착되어 있었고, 무기(weapon)를 소재로 한 3D 대전액션게임으로는 소울엣지(남코 제작, 소울칼리버의 전신)가 있었죠. 당시에 코에이가 이 게임을 아케이드 버전으로도 함께 출시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지만 여타 대전액션들에 비해 살짝(?) 떨어지는 게임성을 미루어본다면 그리 긍정적인 결론을 기대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결국 오메가포스의 야심찬 시작은 보기 좋게 실패로 이어졌지만, 이 게임이 3년 후부터 대박 행진을 이어갈 차기작들의 근간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 당시엔 캡콤이 삼국지 액션 게임을 더 잘 만들었다. 이 미니게임 하나 때문에 장비를 선택해야만했지만 ::


# 계속되는 외도와 실패


시작부터 난항을 겪은 코에이였지만, 그래도 큰 뜻을 품고 결성한 오메가포스를 밀어주고 싶었나봅니다. 점점 하향세를 그리는 PC게임보다는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콘솔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선 오메가 포스를 중심으로 나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판단이었겠죠. 그래서 코에이는 오메가포스의 첫 번째 실패를 딛고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가장 자신 있던 삼국지가 실패하다보니 다른 주제의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을까요. 오메가포스를 앞세운 코에이의 '외도'는 새천년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 사이에 Destrega와 FPS게임 WinBack을 각각 출시했지만 이들 역시 별 다른 소득 없이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WinBack의 경우, 아직 콘솔로 FPS를 즐기기엔 무리가 따랐기 때문에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아직은 PC게임시장이 건제한데다 FPS 게임을 콘솔로 즐길 생각을 안했었죠. 이렇게 3번의 실패가 거듭되자 오메가포스는 존속의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 코에이로서는 도박에 가까운 외도가 아니었을까? ::


# 마지막 도전


새천년을 맞이하는 2,000년도엔 콘솔 게임 역시 새 시대를 열게 됩니다. sony에서 출시된 PS2가 콘솔 시장을 장악해가며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죠. 써드파티의 킬러타이틀들을 확보해가며 콘솔 독점체재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메이저 게임업체들을 섭외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들 중에 코에이도 포함되어 있었죠. 당시 경영 일선만 몸 담았던 시부사와 코우도 개발자로 복귀 하면서 PS2 프로젝트를 진행해 결전2를 개발하는 한편, 오메가 포스에도 '마지막 기회'가 주어집니다.

당시 시부사와 코우는 삼국무쌍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삼국지' 게임은 자사의 철밥통이었는데 전작의 실패가 안타까웠거나 자존심이 상해있던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그래서 오메가포스에게 삼국무쌍을 다시 만들라는 지시를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전작에 회의를 느낀 오메가포스로서는 대전액션 장르의 프로젝트로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부사와 코우를 설득해서[각주:3] 새로운 형태의 삼국무쌍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개발 여건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결전1의 엔진 소스를 개량해서 사용한데다, 제작비 부족으로 캐릭터의 모션도 각자 개성 있게 구현되지 못했습니다.[각주:4] 좋은 여건 속에서 게임을 만들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존폐 위기에 놓인 오메가포스로서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렇게 해서 1:1대전액션에서 3인칭 시점의 1:多 형태의 전술 액션 게임이 완성 되었습니다. 오메가포스에게는 마지막 배수진이었고 전작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고자 '진정한' 삼국무쌍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코에이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진·삼국무쌍(Dynasty Warriors 2)[각주:5]의 시작입니다.

  1. 빠칭코 회사에서 시작한 닌텐도도 마찬가지겠지만, 한 사람의 뛰어난 프로듀서가 기업의 운명을 바꾸는 건 대단한 일이다. 닌텐도에 미야모토 시게루가 있었다면 코에이에는 시부사와 코우가 있었으니까. [본문으로]
  2. '에리카와 요이치'라는 본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이 더욱 유명해져버렸다. [본문으로]
  3. 이에 대해서는 시부사와 코우가 오메가포스에게 새로운 형태의 삼국무쌍이 주문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직 정확한 정보가 없으므로 100%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본문으로]
  4. 위나라의 경우 '조조'를 제외한 전캐릭터들의 기본 모션이 모두 똑같았다. [본문으로]
  5. 영어권 버전에서는 최초작인 삼국무쌍을 1편으로 치기 때문에 타이틀 번호가 하나씩 밀려난다. 즉 현재 출시된 진삼국무쌍5는 Dynasty Warriors 6가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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