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게임 기업 닌텐도가 120년간 업계를 선두할 수 있던 것은 '놀이 문화'에 대한 기업 이념과 비전을 관철해온 결과다. ::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우리나라 전 국민의 90% 이상이 한 번쯤 접해보고 즐긴다는 '고스톱'은 48장의 화투(花鬪)를 가지고 만든 게임입니다. 이 화투는 19세기 조선 말기에 일본 쓰시마섬의 상인들로부터 넘어와 우리 식으로 변형되었다고 전해지는데요,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일본의 야마우치 후사지로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 화투가 오늘날 게임 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닌텐도(Nintendo)의 시작입니다. 

화투의 탄생, 야마우치 후사지로

:: 화투를 만드는 야마우치 후사지로 ::

19세기말 일본 메이지 시대, 교토에 살던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内房治郎)는 평소 그림을 잘 그리고 손재주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개화 후 일본에 서양 문물이 급속도로 들어오면서 트럼프 카드 게임을 처음 접한 그는, 조개 껍데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본 풍속과 결합해서 스스로 독창적인 카드를 만듭니다. 1년 12달을 상징하는 카드마다 4장씩 엮어서 총 48장으로 표현한 놀이용 카드를 그렸는데요, 각 달마다 스토리를 담아냈고 카드마다 등급과 점수를 다르게 매겨서 다양한 형태의 게임을 표현할 수 있게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화투의 기원인, 하나후다(花札, hanafuda)입니다. 반은 재미 삼아 만든 이 화투로 사업의 가능성을 걸어본 야마우치는 본격적으로 상점을 열어서 자신이 만든 카드를 생산-판매하기 시작합니다. 메이지 22년(1889년) 9월 23일, 자신의 사업을 하늘에 맡긴다는 뜻으로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임천당골패)>'로 지은 카드 상점이 이렇게 시작 됩니다.

닌텐도를 창업한 아마우지는 본격적으로 화투 생산에 들어갑니다. 카드 한 장에 종이를 여러 장 겹쳐서 손에 쥘 만큼 두껍게 압축하고 외곽선을 강조하기 위해 꽃잎으로 추출한 물감들을 사용해서 화려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들의 첫 수공업 제품인 화투 '대통령(大統領)' 은 당시 놀이 문화라는 개념이 모호했던 교토 내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화투의 가장 큰 장점 이었습니다. 야마우치는 닌텐도 배 화투대회를 열어서 교토 인근지역에서 주목을 받을만큼 비즈니스 수완을 발휘합니다.

:: 닌텐도의 화투 대통령(大統領)은 나폴레옹 이미지로 패키지 되어 있다. ::

화투가 시작부터 일본 전역에 인기몰이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업 초기엔 교토와 인근 지역에만 판매를 하는 정도로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폭력조직 야쿠자들이 화투를 도박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닌텐도의 사업은 그야말로 '대박'이 터집니다. 전국에 기하급수적으로 야쿠자들의 도박판이 만들어지면서 화투의 수요가 급증합니다. 화투는 무엇보다 소모품이었기 때문에 금방 종이가 찢어지거나 너덜너덜해져서 자주 교환해야 했습니다. 결국 닌텐도는 넘치는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 전문적으로 도제를 육성해서 대량생산 체재로 돌입합니다. 화투의 첫 성공에 이어 야마우치는 1902년, 일본에서 최초로 서양의 트럼프 카드를 생산하게 됩니다. 기존의 트럼프들은 재질이 나빴지만 야마우치는 화투를 제작하던 노하우를 발휘해서 고품질의 트럼프를 함께 만들어서 판매합니다. 화투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역시 도박판에서 많이 사용하던 상품이라 날개 돋친듯 팔려나가기 시작합니다.

화투와 트럼프 카드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닌텐도였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토와 오사카 인근 지역에만 직영판매하다보니 전국적인 수요를 감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19세기 말은 현대와 다르게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쉽게 갖춰지지 않던 때였습니다. 이런 닌텐도의 고민거리는 일본담배소금공사(일본전매공사)와의 협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담배와 소금은 일본에서 국가가 운영하던 독점 산업이라 전국적인 유통과 판매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화투나 트럼프는 담배 한 갑 크기를 지닌데다, 담배 외판의 주 거래 업소 중에 하나가 도박장이었던 점에서 닌텐도의 상품과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유통망까지 갖춘 닌텐도는 이렇게 승승장구 하며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 닌텐도의 화투와 카드 광고판 ::

수성의 닌텐도, 야마우치 세키료

192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의 데릴 사위인 야마우치 세키료(山內積良)가 닌텐도의 차기 대표로 취임합니다. 당시 후계자가 없던 후사지로는 자신의 딸을 통해 데릴 사위로 세키료를 맞아들이게 되었고, 2대 야마우치는 기업을 좀 더 큰 규모로 일궈냅니다. 1933년에 '합명회사 야마우치 닌텐도(合名会社山内任天堂)'로 새출발하며 철근 콘크리트로 사옥을 짓고 제품의 업그레이드를 단행합니다. 수공업적인 생산 시스템도 공장과 기계로 인한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고 종래의 일본전매공사와의 협력으로 진행된 위탁 판매 체재만으로로는 판매에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닌텐도 스스로 유통망을 갖추기로 결심합니다. 1947년에 닌텐도는 자사만의 전문 유통회사인 '주식회사 마루후쿠(丸福)'를 별도로 설립해서 전국적으로 직영 판매를 확대합니다.

화투의 품질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다양한 종류의 제품이 나온 것도 2대 야마우치 때였습니다. 당시 종이를 여러 장 붙이던 수공업 형태로는 생산 속도와 비용 측면에서 모두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공장에 의한 대량 생산 체재를 갖추면서 종이 사이에 석회 가루를 넣어서 굳히고 앞뒤로 디자인을 더욱 세련되게 하는 등 제품의 질을 향상 시킵니다. 무엇보다 석회 가루를 넣는 제조 방법에는 부수적인 효과도 가져왔는데요, 오늘날처럼 화투를 칠 떄마다 특유의 경쾌한 탁! 탁! 소리가 나게 되면서 게임을 즐기는 재미가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치다 보면 안에 석회가 터져 나와서 빈번하게 재구입해야 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화투는 비싼 제품이 아니고 소모품으로 인식되어서 재구입에 대한 반감도 적었던 점이 닌텐도에게 큰 이익을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도박 산업이 더욱 커지면서 닌텐도의 화투와 트럼프의 인기는 도무지 식지 않았습니다.

:: 일본에서 최초로 트럼프를 생산한 곳도 닌텐도였다. ::

격변의 닌텐도, 야마우치 히로시

:: 야마우치 히로시 ::

닌텐도의 야마우치 가문에는 아들 복이 없던 걸까요? 1대 야마우치에게 아들이 없어 데릴 사위가 가업을 승계해야 했던 것처럼 2대 야마우치에게도 후사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습니다. 결국은 장녀 야마우치 키미를 통해 데릴사위로 들여온 사카노조가 닌텐도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리고 1927년, 사카노조의 아들 야마우치 히로시(山内溥)가 태어나면서 야마우치 가문에 아들 문제가 해결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히로시가 5살 쯤 될 무렵 차기 대표로 내정된 사카노조가 돌연 가출해 버립니다. 그의 아내 키미는 이 일을 부끄럽게 여겨 사카노조와 이혼 절차를 밟게 되고 2대 야마우치의 어린 손자인 히로시가 닌텐도의 상속자가 됩니다. 아직 전문 경영인 개념이 없던 20세기초 세습 경영은 기업의 존폐문제였던 시절인 만큼 기업의 후사 문제는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2대 야마우치는 이런 내부적인 위기와 문제를 사전에 종식시키고자 어린 시절부터 히로시를 상속자로 지명하고 철저한 후계자 교육을 시킵니다. 1947년에 닌텐도가 주식회사 마루후쿠를 설립했을 때 어린 야마우치 히로시가 대표로 취임한 것도 후계자 승계의 일환이었습니다.히로시는 어린시절부터 외조부인 2대 야마우치로부터 기업 경영을 위한 교육 부터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늘상 외조부에게 고집스럽고 반항적인 모습으로 대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어느덧 성인이 된 히로시가 와세다 대학 법학과에 입학할 무렵 외조부 2대 야마우치가 갑작스런 뇌졸증으로 쓰러지면서 히로시는 22세의 젊은 나이에 닌텐도의 대표가 됩니다.

이제 겨우 약관의 히로시가 기업을 이끌어가기엔 반대파가 많았던 탓이었을까요? 1949년, 히로시는 외조부로부터 닌텐도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야마우치가의 친척들을 모두 퇴사시키고 반대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갑니다. 회사 경영에 있어 야마우치 일가 친인척들의 간섭과 반대가 심한대다 지난 60여년간 기업 내에 팽배해있던 연공서열제와 관료주의가 닌텐도의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는 취임 후 자신의 경영 방침에 걸림돌이 될 많은 중역들을 정리해고 시켰고 이런 구조조정 과정에서 1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어린 경영자를 따를 수 없다면서 파업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대대적인 물갈이 작업을 마친 야마우치 히로시는 1951년, 사명을 '임천당골패 주식회사'로 변경하고 새로 매입한 부지에 지은 신사옥으로 이전해 새출발 합니다. 수십년간 화투와 트럼프만 만들던 닌텐도에게 약관의 젊은 대표로부터 새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 야마우치 히로시가 지휘하던 초기의 닌텐도는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며 '정체성' 찾기에 나선다. ::

참고 자료

닌텐도 이야기 -김영환 저- <한국경제신문>
http://www.nintendo.co.jp/n09/hana-kabu_games/index.html
http://ja.wikipedia.org/wiki/%E5%B1%B1%E5%86%85%E6%BA%A5
http://www.nintendo.co.jp/corporate/history/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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