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어서)
 
  

:: 어려서부터 보드게임을 즐기던 시드 마이어는 훗날 시뮬레이션 장르의 PC게임으로 재구성한다. ::

보드게임과 해적 이야기를 좋아하던 소년

 
195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태어난 시드 마이어(Sid Meier)는 그당시 또래들처럼 보드게임을 즐겨하고 모노레일과 비행기 모형을 가지고 놀며 해적 이야기와 세계 역사에 심취해있는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그가 만들어온 게임들이 유년시절의 추억과 관심 분야가 반영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드 마이어는 보드게임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모노폴리, 캔디랜드 등의 보드게임들을 가족과 즐겨왔고, 좀 더 나이가 들고 나선 아발론 힐(Avalon Hill)社의 보드게임들[각주:1]을 차례차례 섭렵해왔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보드게임들을 좋아했는지 짐작할만 합니다.
  
그 후 시드 마이어는 미국 미시건 대학교에 입학해서 역사와 컴퓨터공학 전공을 선택하게 됩니다. 워낙에 게임을 좋아하던 그였기에, IBM 메인프레임을 이용해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만드는 등 대학생 시절부터 게임을 제작하는 취미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의 이런 몰두가 때로는 학고(학사경고)의 위기에 놓이는 등 학업에 영향을 줄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매릴랜드 볼티모어주로 이주한 시드 마이어는 GeneralInstruments社에 입사해서 금전출납기 등의 전자기기를 프로그래밍하고 설치하는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게 됩니다. 하지만, 워낙에 게임을 좋아하던 그였기에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타리800[각주:2]을 가지고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같은 게임들을 만드는 취미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어린 시절의 관심사와 꿈을 전공으로 선택해서 오늘날까지 커리어를 밟고(순조로운 테크트리) 있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바로 게임 디자이너로 인생을 이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워낙에 숫기가 없는데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인 그가 오늘날 위대한 게임 디자이너로 있게한 '빌 스텔리(Bill Stealey)'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그저 취미로나 게임을 만들고 즐기던 일개 프로그래머로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미 공군 조종사와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운명적인 만남 ::

마이크로프로즈(MicroProse)의 탄생

 
당시 미 국방성 공군 비행 조종사였던 빌 스텔리와 시드 마이어의 인연은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레드 바론(Red Baron)[각주:3]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느 한 컴퓨터 컨퍼런스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공통 관심사였던 밀리터리 및 전투기와 컴퓨터 비행 시뮬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분을 쌓게 됩니다. 빌 스텔리가 워낙에 컴퓨터와 게임에 관심이 많았기에 둘의 만남이 가능했던거죠. 당시 인기 있던 아타리의 '레드 바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현직 비행 조종사와 프로그래머의 게임 대결이 성사 되었습니다. 결과는, 주위의 예상을 뒤엎고 시드가 빌보다 많은 스코어를 따내면서 승리하게 됩니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이라 하지만, 어떻게 조종사인 나보다 많은 점수를 따낼 수 있었냐는 빌의 질문에 시드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이 게임에 쓰인 알고리즘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패턴을 예측해서 많은 스코어를 따낼 수 있었지."
이어서 시드 마이어는 '나라면, 1~2주 안에 이보다 더 나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덧붙였습니다. 때마침 컴퓨터 관련 사업을 구상하던 빌은 시드에게 게임 회사 창업을 제안했고, 두 사람은 1982년에  $1,500를 투자해서 마이크로프로즈(MicroProse)를 설립[각주:4]하게 됩니다.
 
  

:: 빌 스텔리와 시드 마이어를 만나게 해준 게임, 레드 바론 ::

이들의 초반 사업 계획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마이어는 게임을 만들고, 스텔리는 게임을 판매한다.'[각주:5]가 전부였으니까요. 그래도 내성적인 성격의 개발자 시드 마이어와 호탕한 성격에 경영자의 자질을 갖추고 있던 빌 스텔리는 좋은 조합이 되었습니다. 마이크로프로즈가 설립되고 2년 뒤인 1984년에 Solo Fiight가 출시[각주:6]됩니다. 시드 마이어에게는 게임 디자이너로서 데뷔작이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이 된 셈입니다. IBM 메인프레임과 아타리 8-Bit 운영체제로 만든 이 게임은 당시 아케이드 머신이 대세였던 비행 게임을 가정용 PC로 옮기는데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1985년에는 본격적으로 보드게임을 기반으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NATO Commander가 출시됩니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소비에트와 NATO 진영의 대전을 다루는 전쟁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이데올로기가 팽배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오직 NATO 진영만 선택해서 플레이 할 수 있던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 시드 마이어는 마이크로 프로즈에서 밀리터리 장르의 게임로 경험을 쌓게된다. ::

마이크로프로즈 시절의 초반에 시드 마이어는, 공동 창업자 빌 스텔리와의 공통 관심사였던 밀리터리 장르의 게임들(전투기, 전투함, 전쟁 시뮬레이션 등)을 위주로 제작하면서 차근차근 게임 개발자의 경험을 쌓아갔습니다.
  
시드 마이어는 자신의 첫 작품에 대해 이렇게 회상합니다.
 
"저희들이 출시할 첫 게임들은 플라스틱 통안에 담겨져서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메뉴얼 조차도 인쇄하지 못하고 복사기를 이용해야만했죠."
80년대 IT 벤쳐들이 대게 그래왔듯, 빌과 시드의 마이크로프로즈 역시 차고 규모로 사업을 시작합니다.(Garage Operation) 시작은 미약했지만 게임 사업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임을 직감하고 믿었기에 꾸준히 게임 타이틀들을 개발해 나가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1990년까지 마이크로프로즈는 2,500만 달러를 축척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 시드 마이어의 명성은 두 게임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시드 마이어(Sid Meier)라는 이름이 게임에 주는 의미

 
시드 마이어는 1987년과 1990년에 자신이 유년시절부터 그토록 좋아하던 해적 이야기와 가족들과 즐겨 하던 모노폴리를 각각 게임으로 만들어 출시하게 됩니다. 1987년에 해적 게임의 출시를 앞두고 마케팅 감각이 있던 빌 스텔리는, 게임의 홍보 효과를 보다 극대화 하려는 목적으로 시드 마이어에게 게임에 본인의 이름을 집어넣는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내성적인 성격의 시드 마이어는 게임에 자신의 이름을 넣는 것을 상당히 부끄러워 했습니다. 그래도 빌의 끈질긴 요청과 시드에게는 애정이 깊던 해적 게임이었기에 결국 빌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최초로 게임 타이틀에 개발자의 이름을 추가한 시드 마이어의 해적(Sid Meier's Pirates!)은 그렇게 탄생하였습니다. 이어서 시드 마이어는 1990년에도 시드 마이어의 레일로드 타이쿤(Sid Meier's Railroad Tycoon)을 출시하면서 이 게임에도 자신의 이름을 삽입합니다. (이 두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세 번째 연재분에서 하겠습니다.)
  
그간 밀리터리 게임으로 경험을 쌓아온 시드 마이어는, 본격적으로 유년시절에 보드게임을 통해 쌓아온 추억과 꿈을 자신의 이름을 새긴 게임으로 재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시드 마이어의 게임은 워낙에 잘 만들어진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게임에 삽입하면서 게임을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본인 역시 그에 걸맞는 명성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해적이나, 타이쿤, 문명이 그냥 출시 되었다면 시드 마이어가 게임 업계에 오늘과 같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이런 점에서 빌 스텔리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게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위대한 탄생, 시드 마이어의 문명(Sid Meier's Civilization)

  
1980년대부터 가정용 PC가 보급되면서 많은 게임들이 아케이드에서 PC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복잡한 규칙과 전략을 필요로 하는 보드게임들을 PC로 옮기는 작업들이 업계에 한창 붐을 일고 있었죠. 시드 마이어 역시 보드게임 기반의 타이쿤이나 해적 같은 게임들을 제작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즐겨온 보드게임을 PC로 구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보드게임 문명>

1980년에 출시된 보드게임 문명(Civilization)은 Avalon Hill社 외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여러 언어로 출시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7명까지 플레이가 가능하며, 플레이 시간만해도 장장 6시간에 달한다고 하니, 한 번 잡으면 밤잠을 지새우게 만드는 마력은 보드게임 시절부터 존재했나 봅니다. 이 보드게임은 플레이어의 문명을 빨리 발전시켜서 상대편을 제압하는 구조입니다. (총과 검이 대결하면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할테니 빨리 테크트리를 타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게 이 게임의 핵심이었죠.) 여기서 각 문명의 테크 트리, 건축, 혁명, 기아 상태 등의 시스템들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보드게임과 더불어 평소 역사를 좋아하던 시드 마이어가 문명을 PC게임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겠죠. 하지만, 보드게임 문명을 PC로 구현하는 게 생각처럼 수월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게임에 규칙이 많고 볼륨이 방대할 수록 복잡한 알고리즘을 가지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들에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테니까요.
 
최초의 멀티플레이 게임으로 알려진 M.U.L.E. 의 개발자 다니엘 번튼(Danielle Bunten Berry)은 1984년에 The Seven Cities of Gold를 출시하게 됩니다. 이 게임은 최초로 보드게임을 PC로 옮기는데 성공하면서(상위 사진 좌측)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시드 마이어는 훗날 번튼이 만든 이 게임의 어드벤쳐 요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해적(Sid Meier's Pirates!)과 콜로니제이션(Sid Meier's Colonization)에 구현했습니다. 하지만 번튼은 자신의 게임을 어드벤쳐 장르에서 문명과 같은 전략시뮬레이션 장르로 확장하지는 않았습니다.
  

:: 훌륭한 게임 개발자였던 번튼은 과도한 흡연때문에 폐암에 걸려 4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

 
이보다 더 앞선 1982년, 던 대글로(Don Daglow)는 최초의 시뮬레이션 게임(동시에 최초의 god game인) 유토피아(Utopia)를 개발해서 출시합니다. (상위 사진 우측) 이 게임은 아케이드 장르만이 존재하던 게임 시장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고 평가를 받는 동시에 훗날 윌 라이트가 심시티를 개발하는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시뮬레이션 장르의 유토피아는 번튼의 게임보다 보다 더 문명에 가까웠는데요, 던 대글로는 1987년에 보드게임 문명을 PC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Brøderbund라는 게임회사에 경영진으로 스카우트 되면서 무산되고 맙니다.
  

:: 던 대글로는 영화 원작을 게임화하는 데 명성이 있는 개발자다. ::

  
이런 선구자 역할을 해준 두 게임들을 바탕으로 해적과 타이쿤으로 보드게임 기반의 PC 게임 제작 경험을 쌓은 시드 마이어는 드디어 문명을 PC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게임 시스템은 이미 보드게임을 통해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문명의 핵심 요소인 4X[각주:7]를 게임 내에 잘 녹아들게끔 디자인 하고, 이를 PC로 구현하기 위해 복잡한 알고리즘을 파악해서 AI를 프로그래밍해야 했습니다.
  
시드 마이어는 문명의 프로토 타입 단계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됩니다. 일례로, 문명의 핵심이던 턴제 전략시뮬레이션(TBS) 장르를,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RTS)으로 시도하게 됩니다. 플레이어들에게 더욱 사실적이고 실감나는 느낌을 주려면 실시간이 더욱 효과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실제 플레이를 해본 결과, 실시간은 플레이어가 주인공이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명령만 내리는 제 3자의 입장인 느낌이 더 강했다고 해서 바로 취소하고 오늘날의 턴제로 굳혔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친 뒤 드디어 1991년, 모노폴리와 같이 인생을 경영하는 보드게임을 즐기며 자라왔고 해적 이야기와 세계 역사에 심취한 나머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기에 이르렀으며 밀리터리에 관심이 많던 그는 자신의 이런 꿈을 모두 담아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당신의 왕국을 세워라'[각주:8]는 부제를 가진 시드 마이어의 문명(Sid Meier's Civilization)을 탄생시킵니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왕국을 세워라. ::

  
  
 
[참고 자료]
 
http://www.atarimagazines.com/compute/issue90/Future_Of_Computer_Games.php
http://www.apple.com/games/articles/2008/05/sidmeier/
http://www.joabj.com/CityPaper/meier.html
http://en.wikipedia.org/wiki/Sid_Meier%27s_Civilization
http://www.motherboard.tv/2010/4/14/oral-history-of-gaming-game-godfather-sid-meier-and-the-48-hour-game
http://www.gamespot.com/features/sidlegacy/
 
 
 
  1. 아발론 힐의 보드게임들이 워낙에 많았지만, 그는 특히 밀리터리와 역사를 소재로한 게임을 좋아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아타리OS로 구동되는 8-bit 가정용 컴퓨터. [본문으로]
  3. 1980년에 아타리(ATARI)가 개발한 1인칭 시점의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당시 미국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본문으로]
  4. 하지만 시드 마이어와 빌 스텔리는 설립 후 몇 달간 본업과 함께 투잡(?)을 뛰게 된다. 결국 창업 후 2년 정도가 지나서야 첫 타이틀을 출시하게 된다. [본문으로]
  5. Meier would make games, Stealey would sell them. [본문으로]
  6. 북미 기준으로 1983년에 Release 되었다고 하지만, 정식 출시는 1984년으로 명시되어있다. [본문으로]
  7. exploration(탐험), exansion(확장), exploitation(개척), and extermination(점령) [본문으로]
  8. Build an empire to stand the test of tim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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