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의 비디오게임으로 평가 받는 Tennis for Two ::

 
  
(지난 시간에 이어서)
  
  
  

윌리엄 히긴보텀(William A. Higinbotham :: 1910.10.25 ~ 1994.11.10)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계획[각주:1]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는 물리학자로, 미국 뉴욕에 위치한 원자핵 물리학 연구소인 BLM(Brookhaven National Labotary)에서 기계설비 부문 책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소는 매년 가을이오면 일반인에게도 연구소를 개방하는 '방문자의 날'을 열어 연구소의 안정성을 보여주고자 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소를 찾는 방문객들은 그곳에서 삽화 자료나 기계 설비 따위를 보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에 쉽게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1950년대에도 여전히 컴퓨터나 기계가 전쟁의 도구로 쓰이는 악마의 물건이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이 팽배하던 시절이었죠.
  
히긴보텀 박사는 물리학자인 동시에 컴퓨터 과학자이기도 했었는데요, 방문자의 날이 삽화 자료나 복잡한 기계장치 따위나 구경하는 지루한 연례행사임을 간파하고는 대안을 찾게 됩니다. 오늘날 최초의 비디오게임으로 불리는 테니스 포 투 (Tennis for Two)는 이러한 동기로 탄생하게 됩니다.
  

저는 그동안 연구소를 찾은 방문객들이 보기만 하는 평범한 전시 일정에 별 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죠. 그후로 몇년 뒤에 직접 플레이 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용 테니스 게임을 만들어서 선보였습니다.
 
히긴보텀 박사는 연구실에 있던 Systron Donner SD-3300 아날로그 진공관 컴퓨터를 이용했는데요, 사실 이 컴퓨터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핵폭탄 발사를 위해 탄도 거리를 측정하는데 쓰이던 군사용 목적의 컴퓨터 였습니다. 거기에 5인치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 디스플레이를 부착해서 출력하고 게임 전용 입력장치 컨트롤러를 고안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대부분 최초의 게임들이 전쟁용으로만 쓰이던 컴퓨터를 개조해서 탄생시킨 점은 상당히 의외인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 연구소 오픈하우스에는 이렇게 관련 설비들을 전시하고 게임도 시연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확대는 Tennis for Two의 오실로스코프 디스플레이와 컨트롤러 2개) ::

 
수많은 기계들과 방사능 탐지기 등으로 복잡한 시설 속에서 히긴보텀 박사가 2주만에 게임 개발을 마칠 수 있던 것은 Robert V. Dvorak 이라는 또 다른 공동 개발자[각주:2]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완성한 뒤에 이들은 Tennis for Two 라는 이름을 지었고, 제목 그대로 최초로 2인 대전이 가능한 비디오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은 완성 되었고 드디어 1958년 10월 18일, 그 해 연구소 방문자의 날에 Tennis for Two가 대중들에게 최초로 공개됩니다.
  
  
 
이 초창기 테니스 게임의 모습은 오실리스코프 디스플레이 수평선산에 가로 방향의 코트로, 가운데 작은 수직 라인을 네트 경계선으로 표현해서 공을 치고 받는 형태였습니다. 특별히 공이 네트에 걸리면 공의 각도가 불규칙하게 변하는 기능도 구현이 되었었는데요, 컨트롤러에서 돌리는 다이얼로 공을 치는 각도를 변경하고 버튼으로 공을 치게끔 구현되어 있어 상대방이 예측하기 힘든 대전 플레이가 가능했습니다. (다만 공이 네트 안쪽의 내 코트 영역에 들어 올때만 언제든 자유롭게 칠 수 있죠)
  
히긴보텀 박사가 기억하는 Tennis for Two는 이렇게 전해집니다.
  
Tennis for Two는 아주 단순한 디자인이었습니다. 그 당시(1950년대) 아날로그 컴퓨터는 디지털 컴퓨터와 같은 정밀함도 없고 오작동이 심한데다 조잡하기 짝이 없었죠. 하지만 (제가 만든) TV게임에는 정밀도를 요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Tennis for Two는 1958년에 첫 공개되었고 이듬해인 1959년, 그리고 1961년을 마지막으로 BNL 방문자의 날에서 모습을 감추게 됩니다. 획기적이고 기념비적인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극소수에게만 공개 되었기 때문에, 세간에 주목을 받지 못한 체 잊혀지게 됩니다. 결국 SD-3300과 오실리스코프는 분해되어 각기 다른 목적으로 쓰이게 됩니다. 히긴보텀 박사는 자신이 만든 이 게임이 다음 세기에 거대한 산업군으로 성장하리라는 것을 일찍 간파했더라면 지금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해 있었을까요?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한 매체[각주:3]로부터 Tennis for Two가 비디오게임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어서 가장 오래된 비디오게임임을 입증받게 되면서 개발자인 히긴보텀 박사도 세간에 주목을 받게 됩니다. 1983년에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만든 이 세기의 발명품에 대한 아무런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는데요,[각주:4] Tennis for Two가 특허를 주장할만큼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특허를 신청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 되었다면, 자신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소유하게 했을 것이라며 남다른 애국심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히긴보텀 박사의 이런 결정 덕분에 이후 핑퐁 형태의 스포츠 게임들이 자유롭게 출시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
  

:: BNL에서는 Tennis for Two가 공개된 50주년을 맞아 개발자 두 사람의 아들들과 함께 기념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

그로부터 50년이지나고 2008년 10월 24일에 BNL은 Tennis for Two가 공개된 지 50주년을 맞아 기념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처럼 약 200여명의 일반인을 초청해 연구소를 개방하는 '방문자의 날' 행사였지만 아쉽게도 개발자 두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기에 특별히 2세들을 초청해 최초의 게임에 대한 업적을 기념했습니다.
 
이 날 방문자들은 그 당시와 비슷한 형태로 재구현 된 Tennis for Two 게임기를 시연할 수 있었는데요, 당시의 컨트롤러 모습은 물론, 아날로그 컴퓨터라서 25초마다 세팅을 다시 해줘야 하는 등 번거로움 까지도 완벽하게 재현하게 됩니다. =)
  
컴퓨터가 오로지 전쟁을 위해 사용하는 악마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에게 유익하고 이로운 기계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즐거움까지 더해주는 엔터테인먼트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전자 게임은 이렇게 선구자들의 손을 거쳐 점점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 됩니다.)
 
  
  

:: 재구현된 Tennis for Two의 전용 컨트롤러 ::

[참고 문헌]
http://pongmuseum.com/history/WillyHiginbotham-PaleolithicPong.php
http://www.bnl.gov/today/story.asp?ITEM_NO=964
http://www.evilmadscientist.com/article.php/tennis
http://www.bnl.gov/bnlweb/history/higinbotham4.asp

  1.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 ::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미국이 영국과 캐나다의 협조아래 수행한 인류 최초의 핵무기 개발 계획의 암호명이다. [본문으로]
  2. 윌리엄은 설계도를 그리고(기획/디자인) 로버트는 설계도를 받아서 패치보드를 만들었다.(하드웨어 제작) [본문으로]
  3. Creative Computing [본문으로]
  4. 특허와 소송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이는 대단한 결정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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