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설립한 8인의 반역자(traitorous eight)들은 실리콘밸리의 전성기를 열며 저명한 기업가들로 성장한다. ::

(지난 시간에 이어서)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의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는 1956년, 기존의 트랜지스터보다 빠르고 다루기 쉬운 4층의 다이오드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우수한 공대생들을 영입합니다. 하지만 괴팍한 성격의 이 천재 물리학자는 과도하게 연구주제를 바꿔가며 직원들을 견습생처럼 괴롭혔다고 합니다. 결국 1년 만에 반기를 들고 회사를 퇴사한 8명은 미 동부의 군수업체인 Fairchild Camera and Instrument Corporation에 자금 원조를 받아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社를 설립하게되고 2년만에 최초의 실리콘 집적회로를 출시합니다. 훗날 8인의 반역자(Traitorous Eight)[각주:1]로 불리게 된 이들로부터 60여개에 이르는 벤쳐들이 탄생 되면서 실리콘밸리는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8명의 멤버 중에는 오늘날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Intel)의 공동 설립자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고든 무어(Gordon Moore)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페어차일드의 비디오 게임 사업부 탄생

:: 제리 라우슨 (1940~2011) ::


8인의 반역자가 회사를 설립하고 십수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970년 초에 한 흑인 엔지니어가 페어차일드에 입사합니다. 제리 라우슨(Gerald Anderson "Jerry" Lawson)[각주:2]은 어린시절부터 TV 상점들을 들락거리며 전자 기술에 관심과 열정을 키워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자 회사에 취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 기술과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1970년대 초에 페어차일드에 입사한 제리는 때마침 아타리가 아케이드용 퐁(Pong)을 출시하면서 미국 전역에 신드롬을 일으킬 때, 이에 자극을 받아 자신의 차고에서 Demolition Derby라는 아케이드 게임기를 직접 만들게 됩니다. 퐁과 같이 동전을 투입해서 즐기는 형태였습니다.

우연히 제리의 아케이드 게임기를 발견한 페어차일드는, 협력업체인 알팩스(Alpex)社가 Intel 8080 프로세서로 구동되는 게임기를 페어차일드의 F8 프로세서로 전환할 수 있도록 기술 자문을 비밀리에 요청하게 됩니다. F8 프로세서로 구동되는 프로토타입을 완성한 제리는 보고를 위해 예산안을 들고 페어차일드의 부사장을 만나러 코네티컷주로 향합니다. 그리고 제리의 프로토타입 게임기를 살펴본 이들은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 프로토타입을 보니 가치 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 같군요. 한 번 추진해봅시다."[각주:3]

이렇게해서 페어차일드의 비디오 게임 사업부가 신설 되었고 제리는 신 사업부의 엔지니어 겸 마케팅 수장을 역임하게 됩니다. 오늘날, 2세대 비디오 게임기 시장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콘솔 페어차일드 채널 F는 이렇게 탄생합니다.

최초의 ROM 카트리지 게임기

:: Fairchild F8 Processor ::

페어차일드는 1976년, 자사의 F8 프로세서[각주:4]를 탑재한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페어차일드 채널 F (Fairchild Channel F)[각주:5]를 출시합니다. 64byte 메모리에, 2Kb 비디오 메모리가 내장되어 있었으며, 본체에 3채널 스피커가 달려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채널F는 Pong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라인당 4 컬러의 그래픽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채널F는 하드웨어 부품을 아웃소싱하는 과정에서 난항을 겪어야 했습니다. 게임기가 $169.95의 고가에 가격이 책정된 것도 하드웨어 단가가 높은 이유였습니다. 특히 그래픽 성능 향상을 위해 RAM 사용량이 늘어났는데요, 외주로 MOS Technology社의 RAM을 이용하면서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당시 페어차일드도 RAM 을 만들고 있었지만 생산 단가 때문에 MOS에서 생산된 RAM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MOS의 RAM은 불량률이 너무 높았기 떄문에 생산 단가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제리는 직접 빨간 수레와 박스 2개를 준비해서 MOS의 테스트 공정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테스트에 통과 못하고 버려진 불량품들을 박스에 담았습니다. 90% 정도가 채워졌을 때 공장 밖으로 나가서 길거리에 지나가는 MOS 직원들에게 공짜로 뿌리면서 RAM 제품의 품질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동 후로 페어차일드가 유닛당 $2로 가격 협상을 이끌었지만 제리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직접 인텔의 RAM 생산 부서를 방문해서 구해온 RAM 10개를 들고 부사장을 찾아갔습니다.

"이걸 좀 보십시오. 부사장님께서 대부분 사용 불가능한 (MOS의) 쓰레기를 개당 2달러씩 지불할 때, 저는 인텔에서 사용할 수 있는 1달러짜리 RAM을 10개나 구해 왔습니다."[각주:6]

:: 2개의 컨트롤러가 연결되고 게임 카트리지가 별도로 판매한 오늘날 콘솔 형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채널 F가 오늘날 콘솔 2세대를 시작한 게임기로 평가 받는 이유는, 최초로 ROM 카트리지(일명 게임팩)를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카트리지 형태는 마그나복스의 오디세이가 최초였지만 단순 점퍼 연결 방식이었습니다. 제리의 비디오 게임 사업부는 더이상 보드 안에 게임을 내장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하드웨어 부피가 너무 커져버리기 때문에 발열과 고장의 위험을 감수하기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결국 이런 욕구가 게임이 프로그래밍된 ROM 카트리지를 따로 만들어서 삽입하는 디자인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채널F에는 하키와 테니스 게임 2개가 게임기 안에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었고 카트리지는 개당 $19.95에 판매되면서 게임기가 단종되기까지 총 27개의 카트리지가 출시되었습니다. 카트리지에는 하나 또는 두 개 이상의 게임이 내장되어 있었습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비디오 게임기라는 점에서 시장에 큰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었고 약 25만대의 판매고를 달성하면서 선전하게 됩니다.


:: 페어차일드 채널 F 의 TV광고 ::

카트리지를 채택한 2세대 콘솔 시장으로 진입

페어차일드 채널 F의 획기적인 시스템에 자극을 받은 아타리는 스텔라(Stella)라는 코드명의 카트리지 기반의 게임기 개발에 박차를 가합니다. 이듬해에 채널 F 보다 더 나은 그래픽과 사운드를 가진 아타리 2600가 출시하면서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합니다. 이제부터 비디오 게임 시장은 카트리지를 채택한 2세대 시장으로 돌입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참고 자료]

http://www.vintagecomputing.com/index.php/archives/545
http://en.wikipedia.org/wiki/Fairchild_Channel_F


  1. '8인의 반역자'라는 이름은, 쇼클리에 의해 붙여진 별명으로 전해진다. [본문으로]
  2. 흑인 컴퓨터 엔지니어로, 1970년대 실리콘밸리의 IT 수장들이 모여있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의 일원이기도 했다. 훗날 애플을 설립한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도 클럽에 가입되어 함께 활동했다. [본문으로]
  3. VC&G의 제리 라우슨 인터뷰 내용에서 발췌. [본문으로]
  4. F8은 인텔을 설립한 로버트 노이스가 페어차일드를 퇴사하기 전에 개발 팀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프로세서는 출시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프로세서로 인텔의 8048 모델 개발에 큰 영향을 주었다. [본문으로]
  5. 이 콘솔은 초기에 페어차일드 VES (Video Entertainment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지만, 이듬해에 아타리가 VCS(Video Computer System)를 출시하면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 [본문으로]
  6. VC&G의 제리 라우슨 인터뷰 내용에서 발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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