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3년 발발한 오일 쇼크 사태는 일본인에게 큰 불안을 안겨주었다. 갑작스런 물가 상승을 두려워한 나머지 시장 거리마다 생필품을 미리 사재기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사진은 1973년 11월 1일자 아사히 신문 보도 자료 ::

(지난 시간에 이어서)

위기 = 새로운 기회

완구 회사로 승승장구하던 닌텐도에게 오일 쇼크의 타격은 컸습니다. 갑작스런 물가상승을 두려워한 나머지 생필품을 사재기 하고, 과소비를 줄이는 등 일본 전역에 불안한 심리가 경제 활동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지갑문을 굳게 닫던 소비재가 바로 오락 산업이었던 만큼, 닌텐도가 야심차게 시작한 광선총 실내 사격장은 개장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닌텐도는 창사이래 비즈니스 정체성을 두고 첫 번째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 내부적인 위기는 놀이 문화, 즉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사업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완구 사업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위기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오일 쇼크'라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빚어진 경제 불황 앞에서는 정체성을 지키기 힘겨웠던만큼 닌텐도가 사라질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닌텐도는 완구 사업을 축소하고 새로운 사업을 모색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닌텐도에게 운이 따라줬던 걸까요? 때마침 미국에서는 마그나복스의 오디세이아타리의 퐁이 출시되면서 TV에 연결해서 즐기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가 인기몰이 중이었습니다. 야마우치 회장은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이 상용화 되면서 가정용 제품들이 출시되면 삶에 큰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고, 이 기술을 활용한 전자 게임 산업이 닌텐도의 정체성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1974년에 닌텐도는 마그나복스로부터 오디세이의 일본 판매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비디오 게임 사업에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 1977년도에 출시된 닌텐도의 첫 비디오게임기 Color Tv Game 6. 총 4가지 모델로 출시 되었다. 특히 사진의 6S 화이트 모델은 C형 건전지만 사용 가능했던 초기 모델로, 소량으로만 판매되었기에 지금도 옥션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

Nintendo Color TV Game (任天堂 カラー テレビゲーム)

닌텐도는 마그나복스의 오디세이를 수입 판매하면서 직접 비디오 게임기를 만들기로 결심 합니다. 하지만 당시엔 게임기 개발 기술이 없었기에 기술 지원을 받아서 공동으로 제작할 전자 회사가 필요 했습니다. 광선총 개발의 주역인 우에무라 마사유키는 미쓰비시와의 기술 제휴를 추진해서 본격적인 비디오 게임기 개발에 돌입합니다.

1977년 7월, 닌텐도의 첫 비디오게임기 Color TV Game (カラー テレビゲーム)이 출시됩니다. 닌텐도는 게임기에 내장된 숫자를 의미하는 Color TV Game 6Color Tv Game 15를 각각 출시합니다. 닌텐도의 이 게임기는 아직 카트리지 교환식이 아니라, 기판에 게임이 내장되어 레버로 모드를 전환해서 즐길 수 있었습니다.  6 시리즈에는 하키, 볼링, 테니스를 각각 2가지 모드로 총 6가지 게임이 내장(3x2)되어 있었고, 15 시리즈에는 여기에 6시리즈에 핑퐁 게임과 슈팅게임이 추가되어 총 15가지(7x2+1)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 게임 모드 설명서와 게임기 본체 중앙 레버들. 원하는 게임 모드에 맞게 조절해서 플레이 가능하다. ::

사실 6와 15 모델은 동일한 프로세서를 이용 했는데요, 닌텐도가 굳이 2가지 모델로 나눠서 출시한데에는 속 사정이 있었습니다. Color TV Game이 출시되기 2년전인 1975년에 이미 에폭(Epoch Co.)社가 일본 최초로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인 텔레비전 테니스(テレビテニス)를 출시한 상태였습니다. 가격은 19,500엔이었습니다. 후발주자 입장의 닌텐도가 선두주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제품을 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판매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 에폭(Epoch)에서 출시한 일본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 텔레비전 테니스(テレビテニス) 마그나복스와 기술제휴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TV 화상에 스코어를 표현하는 기능이 없어서 점수판 다이얼이 기기 하단부에 달려 있다. ::

닌텐도는 6 모델은 9,800엔에, 15 모델은 15,000엔에 출시합니다. 10,000엔 미만의 게임기는 소비자들에게 심리적으로 구매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는데다 경쟁사의 제품의 반 값이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가격이 저렴한 6에 관심을 가지고 나면, 9개 모드를 더 즐길 수 있는 15 모델에 더 눈길이 가기 마련입니다. 닌텐도는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해서 2가지 모델로 판매하는 전략을 실행했고 소비자들은 5,000엔이나 더 비쌈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15 모델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제조업은 채산성을 높이며 이윤을 내는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닌텐도는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채산성이 떨어지더라도 가격을 낮춰서 경쟁 업체과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닌텐도의 이 판매 전략은 성공합니다.[각주:1] 6 모델과 15 모델 도합 100만대 가량 판매[각주:2]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에폭은 같은 해에 4인대전이 가능하고 사격게임도 즐길 수 있는 '시스템10'과 저가형 모델 'M2'를 잇달아 출시하지만 닌텐도 게임기가 워낙에 컴팩트하고 인기가 많아서 판세를 뒤집기 힘들었습니다.

:: Color TV Game 지면 광고 ::


:: Color TV Game TV 광고 ::

 

비디오 게임 회사 닌텐도(Nintendo)

Color TV Game은 6와 15모델 이후로도 1980년까지 Color TV Racing 112Color TV Game Block Breaker, Computer TV Game 등 출시했으며, 1978년도에는 아케이드용 Computer Othello를 출시하면서 아케이드 게임 사업에도 진출합니다. Color TV Game 의 성공으로 이제 닌텐도는 명실상부 비디오 게임 회사로 변신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첫번째 위기는 완구회사로, 두 번째 위기는 비디오 게임 회사로 변신하면서 극복한 셈입니다. 무엇보다 이 큰 변화에도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사업 정체성은 계속해서 지켜냈습니다. 이제 비디오 게임회사 닌텐도는 1980년에 뉴욕에 미국 지사(Nintendo of America)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섭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 닌텐도의 아케이드 게임기 컴퓨터 오델로 (Computer Othello, 1978) ::

:: 한편, Color TV Game이 출시된 1977년에 한 젊은 공업디자이너가 닌텐도에 입사한다. 하지만 그가 활약하는건 몇 년 뒤의 일이다. ::

[참고 자료]

닌텐도 이야기 -김영환 저- <한국경제신문>
http://ajw.asahi.com/reliving_the_past/leaf/AJ2011110116049
http://blog.beforemario.com/


  1. 닌텐도는 이를 계기로 하드웨어 채산성이 떨어지더라도 소프트웨어로 이윤을 내는 판매 전략을 고수하게 되었고 이는 훗날 비디오게임 산업의 정석이 된다. [본문으로]
  2. 6 모델은 약 30만대, 15모델은 70만대 정도로 추산. (위키 백과 기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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