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9가지 전자 제품 중에 하나로 아케이드 버전 퐁(PONG)의 프로토타입 모델을 꼽았다. 사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아타리에서 잠깐 일하면서 불후의 명작 벽돌깨기(Breakout) 게임을 완성시킨 장본인이었다. (사진 출처 - Gizmodo) ::

  
(지난 시간에 이어서)
  
단골손님 한 명이 스크린 안에 공이 진공 상태에 있는 듯한 모습의 PONG(퐁) 게임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한 친구가 그에게 플레이를 권하자 그 둘은 기계앞에 섰다. 설명서에는 '높은 점수를 얻으려면 공을 놓치지 마세요.'라는 안내가 적혀있었다. 동전을 넣고 기계에서 경적이 울리며 게임이 시작 되자 그들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스크린에 있는 공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만 숨죽여 지켜볼 뿐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스크린 상단의 스코어가 변했다. 3-3. 첫 번째 플레이어는 손잡이를 돌려보기로 한다. 화면 안의 페들이 스크린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 스코어는 5-4. 그의 의도 대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스크린 끝으로 공을 튕기며 나는 PONG의 효과음이 바 안에 울려퍼지며 아름다운 잔향을 남기고 있었다. 점수차는 6-4로 조금 벌어지고 8-4의 더블스코어가 되자 그제서야 두 번째 플레이어는 어떻게 게임을 해야하는지 겨우 눈치챈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게임은 끝나가고 있었으니, 그들의 첫번째 대전은 11-5로 종료되었다.
 
 
  
이미 7 쿼터가 지났지만, 그들은 지치는 기색 없이 게임을 이어갔다. 가게 안에 계속해서 울려퍼지는 PONG의 효과음이 가게의 다른 손님들에게 호기심을 일으킬 만큼 매력적이었다. PONG이 가게에 들어온 첫 날, 영업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가게 안의 모든 손님들이 게임을 즐겼다. 다음날 아침 10시. 많은 손님들이 PONG을 하기 위해 Andy Capps앞에 줄지어 모여들었다. 영업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흘러 밤10시가 되자 불현듯 기계 멈춰버렸다. 동전이 통 안에 꽉 차서 작동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한 것. 동전통을 비우고 나서야 다시 기계가 돌아갔다.
 
Scott Cohen이 쓴 아타리의 역사에 관한 책, 'Zap: The Rise and Fall of Atari'를 살펴보면 1972년 PONG(퐁)을 처음만난 미국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위 글은 미국의 Andy Capp's Cavern 이라는 핀볼바(Bar)에서 PONG의 프로토타입이 최초로 설치되었을 때의 내용을 일부 발췌했습니다. 프로토타입을 통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아타리는 2개의 검은색 손잡이 다이얼이 달린 노란색 캐비넷 모양의 PONG을 미국 전역에 출시했고 전국적으로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일으킵니다. 당시 핀볼게임기계의 경우 1주일에 $40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 많이 번다고 할 수 있었는데 PONG은 1주일에 $200 이상을 벌게 해주면서 너도 나도 PONG을 구입해서 영업소에 들여놓기 시작합니다.
  

:: PONG의 프로토타입 모델 ::

PONG이 출시된 후 펼쳐진 미국 거리의 풍경은 오늘날 '신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PONG이 설치된 가게, 주점, 음식점들마다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동전통이 금방 차버려서 하루에도 여러번 동전통을 비워줘야 했으며, 아타리는 이 사실을 모르고 기계가 고장난 줄로 착각한 업주들들로부터 하루에도 수차례 항의 전화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하루에도 매일같이 은행에 수많은 동전을 들고 찾아가는 업주들 때문에 은행이 동전을 교환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다소 과장이 섞여 있을지 모르지만 PONG의 인기는 그만큼 대단했습니다.
  
  

:: PONG을 만든 앨런 알콘(Al Alcorn)과 여러 버전의 기판들 ::

PONG의 개발을 전담한 앨런 알콘은 7400버전의 TTL IC(직접회로)들을 이용해 기판을 만들었는데요, 그는 칩 하나 당 평균 25~50센트에 이르는 다양한 가격의 IC를 75개 가량 조합해서 기판을 완성합니다. 그는 기판의 오작동률을 1~2%로 떨어질 때까지 고장률을 낮추고, 놀란 부쉬넬이 컴퓨터 스페이스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제작 단가를 낮추는데 집중했습니다.
  
PONG의 개발 비화 중에 가장 재밌는 부분은 바로 '효과음' 입니다. 비디오게임에서 음향 및 사운드가 주는 중요한 위치를 처음으로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됩니다.(마그나복스 오디세이는 효과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PONG을 즐기면서 페들이 공을 튕겼을 때 나는 효과음에 가장 먼저 매료되었는데, 놀란 부쉬넬이 앨런 알콘에게 이 부분에 주변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하면서 진짜 공을 치는 듯한 좋아지는 효과음을 특별히 주문하게 됩니다. 일설에 또 다른 창업자인 테드 데브니(Ted Dabney)는 '피우~[Boo]'나 '쉿[Hiss]' 소리 느낌이 나는 효과음을 넣고 싶었다고 합니다. =)
  
하지만 앨런이 훗날 고백하기를 놀란 부쉬넬이 사운드 효과를 요구할 시점에 이미 예산을 초과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또 부품을 구입해 추가할 수 없었떤 그는 어쩔 수 없이 완성된 기판을 다시 분해해서 사운드톤을 가지고 있는 회로를 찾아 되집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 PONG 비디오게임 산업 최초로 아타리와 마그나복스의 법정공방이 이루어졌다. ::

게임 산업 최초의 법정 공방

 
한편, PONG이 출시된 지 2주 후, 마그나복스는 PONG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자사가 만든 컨트롤러와 게임 형태에 대한 특허 사용권을 지불하지 않고 출시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에는 아타리와 마그나복스와가 특허권을 놓고 법정공방이 펼쳐졌습니다. 콘솔 게임업계 최초의 지적재산권 분쟁이었습니다. 마그나복스의 변호사가 1972년 5월에 켈리포니아 버링게임에서 열린 오디세이 시연회에 놀란 부쉬넬이 Ping-pong 게임을 시연한 것을 목격한 증인을 찾아내면서 마그나복스가 승소하게 되었고, 아타리는 $700,000의 벌금을 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PONG 시리즈의 생산이 모두 끝난 1977년의 일이었고, 그들이 PONG으로 닦은 기반과 성공에 비하면 약소한 수준이었습니다.
  
PONG은 출시 후 1973년 3월까지 8,000~10,000대 가량의 아케이드 기계 판매량을 달성하면서 크게 성공합니다. 아타리는 PONG 기계마다 시리얼번호를 적용했는데 최초 ZZ-001 부터 ZZ-999까지, 다음은 AA-001 부터 AA-999, 그다음은 YY → BB 순으로 1000개 단위로 생산해서 판매량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약 38,000대에 이르는  PONG 시리즈 기계들을 생산했다 하니, 콘솔도 아닌 아케이드 기기로서는 얼마나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ONG은 출시 뒤에도 많은 후속작들이 등장했는데요, 같은 해에 4명이서 즐기는 PONG DOUBLES 을 비롯해서 QUADRA PONG, PIN PONG, DOCTOR PONG 등을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이와 마찬가지로 폭발적인 인기만큼 수 많은 불법 복제품이 양산되면서 골머리를 썩히기도 했습니다.
  
아케이드용 PONG의 성공에 힘입어 1975년, 시어스(Sears)와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퐁(Pong)의 15만대 판매 독점 계약을 맺어 출시합니다. 전량 매진 되면서 아케이드 시장에서와 같은 큰 인기[각주:1]를 누리게 되면서 마그나복스와의 전면전이 시작됩니다. 이제 '1세대 비디오게임'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경쟁구도가 완성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참고 문헌

Zap: The Rise and Fall of AtarI
High score!: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http://www.pong-story.com/arcade.htm
http://www.ieeeghn.org/wiki/index.php/First-Hand:The_Development_of_Pong:_Early_Days_of_Atari_and_the_Video_Game_Industry#Atari_enters_the_home_computer_market
http://www.pong-story.com/atpong1.htm
http://www.gizmodo.com.au/2010/12/steve-wozniak%E2%80%99s-9-favourite-gadgets/
  
  


  1. 당시 퐁을 즐기던 가정집에서는 텔레비전의 형광체가 타서 자국이 남거나 패들이 마모되어 교체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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