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도심 곳곳에 붉은색 배경에 외계인 모양의 간판을 한 게임 센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78년 타이토가 출시한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일본 게임 역사에 성공 신화를 쓴 최초의 게임 기업이었다. 사진은 저자가 2013년에 오사카 여행 중 니혼바시 역앞에서 촬영한 타이토 스테이션 건물 전경 ::

(지난 시간에 이어서)

1978년 7월,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가 출시될 당시 일본의 시대 상황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선샤인60이 완공되고, 나리타 공항의 개항, 디스코가 유행하는 등 고도성장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게임 시장 역시 미국에서부터 들여온 아타리의 퐁(Pong) 시리즈와 이 게임의 영향을 받은 여러 카피캣 게임들이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었고 아직 아케이드 게임 센터는 백화점 옥상이나, 다방, 바(Bar) 같은 곳에 비치되어 있는 정도로 작은 규모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침략자(Invaders)가 일본의 게임 시장을 완전히 뒤집어놨습니다.

인베이더 신드롬 (Invaders Syndrome)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출시 후 일본과 미국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퐁(Pong) 이후로 잠시 정체되었던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 시장은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맛보게 되었고 이 게임으로 인해 사회적인 신드롬 현상까지 발생합니다. 하루에 4억엔에 이르는 100엔짜리 동전이 사용되면서 동전 공급 부족 현상을 겪게 되고 '인베이더 하우스'라는 전용 게임센터가 생기지만, 질 나쁜 성인들과 청소년들이 모이면서 폭력과 절도 등의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등 게임센터의 이미지가 나빠졌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출입을 금하는 교칙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 일본 전역에 스페이스 인베이더 전용의 '인베이더 하우스'가 활성화 되면서 본격적인 게임센터 시대가 열린다. ::

:: 1979년 성인과 청소년 모두 스페이스 인벤이더를 즐기는 모습 (출처 : 아사히 신문 발췌) ::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일본에서만 수십만대의 아케이드 기기가 판매되었고, 미국에서는 오늘날 미드웨이의(Midway Games) 전신인 Bally-Midway Manufacturing을 통해 1979년 한 해에만 6만대의 기기를 판매합니다. 미국의 경우, 1977년에 개봉된 스타워즈의 영향으로 우주 배경의 이야기와 상품들 소비가 급증하면서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어떤 게임이기에 이토록 사회적인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던 걸까요? 단순히 유행에 맞춰 우주 배경으로 게임을 만든 이유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게임은 게임 플레이부터 개발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80년대의 게임 들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슈팅 게임의 선구자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재밌던 이유는 기존의 게임 방식의 틀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게임은 자신이 플레이하는 객체 외에 다른 대상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레이싱 게임조차도 마치 고정되어 있는 듯한 장애물이나 자동차를 피해 다니는 정도였죠. 하지만 이 게임에 등장하는 외계의 침략자들은 플레이어를 직접 공격합니다. 내가 적을 공격할지언정, 적이 나를 공격하는 경우가 없었던 기존의 게임들을 빗대어 보면,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플레이 방식은 '혁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엔딩이 없는 것도 특징입니다.[각주:1] 결국 플레이어는 자신이 죽을 때 침략자들의 침범을 허용하고 맙니다. 게임기마다 플레이어가 얻은 스코어로 RANK를 기록하는 오늘날의 슈팅게임 형태도 바로 스페이스 인베이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전에 없던 독특한 게임 방식으로 크게 성공하자 슈팅게임 장르가 새롭게 형성 되었고, 향후 남코의 갤럭시안과 갤러그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슈팅게임의 전성기를 열게 됩니다.


:: 1978년 초기 버전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플레이 영상 ::

1인 개발, 니시카도 토모히로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개발자 니시카도 토모히로(西角友宏)는 당시 타이토의 아케이드 게임 핵심 개발자였습니다. 배경음-효과음을 만드는 것 외에 전부 혼자서 이 게임을 개발해냅니다. 니시카도는 당시 일본의 마이크로컴퓨터 기술로 게임을 개발하는데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컬러와 사운드, 적의 속도 등을 구현하는데 성능이 뒷받쳐주지 못했죠. 아케이드 게임 기판(PCB)를 새롭게 구성해야만 했습니다.

CPU는 미국산 Intel 8080 채택하고 아날로그 써킷과 TI(Texas Instruments)社의 SN76477 칩을 조합해서 기판을 완성합니다. 게임은 CRT 모니터에 픽셀 단위로 래스터 그래픽을 제공한 오늘날의 2D 게임 형태를 갖췄고, 모노사운드를 제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판을 커스텀하게 구성한 이유였을까요? 니시카도는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게임을 프로그래밍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적들을 컬러로 구현하거나, 적들의 침략자들의 속도를 빨라지게 구현하는 부분이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하드웨어 문제 였습니다. 프로세서 성능상 디스플레이에 객체들이 적어야 빠른 속도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결국 게임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화면상의 적들 수가 많을 때는 속도를 천천히, 그리고 적들의 수가 줄어들 수록 점점 속도가 빨라지게 구현합니다. 마지막 한 마리가 남을 때 엄청난 속도를 보여주는 것도 하드웨어 리소스를 활용한 결과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1978년 최초 모델은 컬러 그래픽을 구현하는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각주:2] 대신, 샐로판지를 붙여서 각 층마다 색깔이 달라지도록 보이는 가림수를 선택하는데요, 재치있는 방법이었습니다.

::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PCB ::

최초의 게임 음악?

게임 음악 역사 관점에서도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한 번의 혁신을 이룹니다. 효과음과 배경음이 구별되어 '동시에 들리는' 최초의 게임이었기 때문이죠.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플레이어는 자신이 이 외계 침략자들에게 발사하는 미사일 소리와 외계 생명체로부터 날라오는 포화 소리를 통해 게임에 몰입하는 동시에, 우주라는 공간의 긴장감을 살리고자 하고자 게임내내 계속해서 흐르는 배경음을 삽입합니다.

"사운드는 외주를 통해 만들었는데요, 저는 외계인이 다가오는 그 순간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심장 박동소리와 같은 형태로 배경음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또, 게임 중간 화면 상단에 빠르게 지나가는 빨간 UFO가 우주 저편에 있는 느낌이 전해지도록 효과음을 추가 했죠.[각주:3]" - 니시카도 토모히로

이 심장박동 배경음은 외계 침략자들이 점점 플레이어 앞에 다가올 수록 빨라지고 나머지 적이 하나만 남았을 경우에는 최고조에 달합니다. 코앞에 적이 다가온 긴장감을 음악으로 극대화 시킵니다. 이런 디테일과 치밀함이 게임을 즐기는 이들을 매료시켰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전세계를 순회하며 명작 게임 음악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여는 VIDEO GAME LIVE는 게임 음악의 역사를 시작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상징하는 로고를 이용하고, 매 공연마다 청중을 초대해서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을 즐기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

최초의 써드파티(Third-Party) 게임, 킬러 타이틀(Killer App)의 시작

이제 비디오 게임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77년에 아타리는 워너 커뮤니케이션에 인수되어 1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개발 비용을 투자 받으면서 차세대 콘솔 게임기인 아타리 VCS(2600)를 출시하지만 1~2년간 시장의 냉담한 반응으로 난항을 겪었습니다. 워너와의 갈등이 심해지자 결국 사장인 놀란 부쉬넬은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나오게 되고, 아타리는 실패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18화 내용 참고)

하지만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위기에 빠진 아타리 VCS를 구원합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실적은 1978년 출시 후 한 해에 일본에서만 10만대의 기기가 설치되었고 6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였고 2년뒤인 1980년이 되었을 때는 설치된 아케이드 기기가 30만대로 늘어난데다 미국에서도 6만대가 설치되었습니다. 1개 기기 당 연 평균 2~3천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하니, 설치만 하면 고수익을 보장하는 게임 기계였습니다.


:: 스웨덴의 아타리 2600 TVCF.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앞세워 소개하고 있다. ::


:: 연예인이 광고하는 아타리 VCS 전용 스페이스 인베이더 TVCF ::

이런 상황에서 아타리는 1980년 1월, 타이토와 함께 아타리 VCS 전용의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출시합니다. 다른 게임 회사의 타이틀을 출시하는 써드파티(Third-Party)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타리는 1980년 한 해에만 200만대의 VCS 판매고를 달성하고 2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킬러 타이틀의 힘을 확인하게 됩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크게 성공하자, 써드파티 전략에 확신을 얻은 아타리는 VCS를 오픈해서 여러 게임 회사들을 초대합니다. 이제 아타리를 필두로 아케이드 게임과 비디오 게임은 몇년간 찬란한 황금기를(Golden Age)를 만끽하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개발한 니시카도 토모히로 초상화로 만든 아트워크. (ⓒ Charis Tsevis. Powered by Bēhance Prosite) ::

[참고 자료]

http://nyamuko.cocolog-nifty.com/blog/2011/09/post-0280.html
http://spaceinvaders.jp/about.html
http://d.hatena.ne.jp/M_perrier/?of=30
http://en.wikipedia.org/wiki/Tomohiro_Nishikado
http://en.wikipedia.org/wiki/Space_Invaders
http://content.usatoday.com/communities/gamehunters/post/2009/05/66479041/1#.UzBCwVfH0tE
http://www.behance.net/gallery/Gadgets-Games-Robots-and-the-Digital-World/2665299
http://www.videogameslive.com/index.php?s=info


  1. 화면의 침략자들을 모두 소탕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구조다. [본문으로]
  2. 차기 버전의 아케이드 기기 부터는 컬러 게임으로 출시한다. [본문으로]
  3. 2009년 5월 6일 USA TODAY 인터뷰 내용에서 발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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