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법 개정안과 업계, 그리고 가정의 딜레마
2011. 4. 6. 06:02ㆍthinking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저는 '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지지부진하고 논란이 많은 게임법 개정안에 대한 이야기를 놓고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부분은 사실 게임법개정안과 셧다운제로 명명되는 청소년 인터넷 보호법를 놓고 '우리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블로그를 통해 개정안 이후에도 사회/기업/가정이 겪게 될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정책(게임법, 청보법)의 딜레마
지난 달에 모바일 게임의 앱스토어 등록에 대한 자율심의와 오토법 등이 개정된 게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며 이제는 공표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링크) 자율심의가 통과되었으니 이제 안드로이드 마켓이나 앱스토어에서 게임 카테고리가 생기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여전히 게임 카테고리가 생성되기 힘든 환경입니다.
왜일까요? 바로 작년말에 여성부와 문화부의 합의 하에 통과된 '셧다운제' 때문입니다. 만16세 이하는 자정부터 오전6시까지 게임을 이용하지 못하는 셧다운제가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게임법의 자율심의가 완성되더라도 오픈마켓에서 게임 카테고리가 열리기 힘듭니다.
애플이나 구글이 마켓 내에 게임 카테고리를 오픈하려면 미성년자의 이용에 추가로 필터링 해야하며, 기존에 있는 게임들을 한국 카테고리에 옮기려면 셧다운 타임에 접근할 수 없도록 옵션을 추가해야 하니 개정안이 완성되어도 실효성은 제로(0)에 가깝습니다.
문화 산업 수출 효자 종목인 게임산업을 진흥하겠다고 나선지 2~3년도 채 안되서 내수시장을 뒤흔드는 정책이 완성되려하는 순간이니 이만한 딜레마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여성부가 '인터넷 중독 예방 기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논란을 빚고 있으니 이대로면 산업 진흥과 규제가 적절한 밸런스를 이루지 못한 채 붕괴될 위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성부는 전혀 모르는 것 같군요.)
게임 업계의 딜레마
그간 게임 회사(업계)들로부터 '이중 규제'에 대한 비판을 많이 받아온 셧다운제가 확정되면 업계는 자정(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청소년들이 자사의 게임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해야합니다. 콘솔이나 모바일 게임에 적용하기 힘들거나 실효성을 놓고 보는 개인적인 감상을 제쳐두고서라도 내수 시장의 발전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중독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그들이 의도 했던 안했던간에, 미성년들의 게임 과몰입과 중독은 더더욱 이슈화 되어가고 있으며 게임을 사회적 병폐로 인식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게임 업계도 많은 공익 활동을 통해 사회에 공헌합니다. 미약하나 중독 방지를 위한 교육이나 투자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연말이면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주고, 놀이터도 만들기도 하는 등 사회에 여러 방면으로 환원하려 노력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과몰입(특히 미성년을 대상으로)에 대한 사회적 책임입니다.
게임과 웹서비스, 모바일의 컨버전스가 가속화되어갈수록 몰입과 중독을 통제하기가 더욱 힘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업계는 재밌고 유익한 게임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그 재미에 따른 몰입성 때문에 쉽게 중독으로 이어지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현재 MMORPG에서 보편화되어가는 피로도 시스템은 임시방편책에 지나지 않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만든 이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테니까요.
흔히들 게임에서 금전을 빼앗아 간다고는 하지만 저연령층일 수록 '돈' 보다는 '시간'을 더욱 빼앗아갑니다. 윤웅기 판사님의 트윗을 인용하면, 앞으로 업계가 겪을 딜레마는 더욱 명확해집니다.
"나무를 베는 제지업계가 푸른 숲을 가꾼다면, 시간을 베는 게임업계는 무엇을 심고 가꾸어야 할까?"
몰입성이 높은 게임은 재미있기 마련이고, 최대한 몰입하게 해서 게이머들이 오랜시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 하기 때문입니다.(물론 장르에 따라 가볍게 즐기는 컨셉도 있기 때문에 각각 다르긴 하지만, 시간을 벤다는 표현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유명한 게임 디자이너가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것도 몰입성에 따른 게이머의 시간을 베게 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규제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속에서 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게임에 직면한 대한민국 가정의 딜레마
제가 늘 확신하며 주장하고 싶은 것은, 정말로 게임 중독을 철폐하려면 가장 먼저 '가정'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게임을 조절하는 것은 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정으로부터 관리되고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개정안이나 셧다운제가 확정된다면 가장 큰 수혜자인 동시에 가장 큰 피해자도 가정이 될 것 같습니다. 자녀들은 이제부터 표면적으로나마 새벽까지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셧다운 제도를 모르는 가정은 대부분 아이들이 자정까지 하게 방치할 것입니다. 얼마든지 부모 계정을 이용해서 게임을 즐길 수 있을테니까요. 애초부터 아이들이 게임을 적절하게 즐기도록 조절해주지 못했던 가정 환경에서는 이를 강제로 막았을 때 이전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의 놀이문화에 너무나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독에 대한 Fact만 놓고 그 원인을 게임 자체에서만 찾고 있습니다. 흔히 게임중독을 알콜중독과 도박중독을 놓고 생각하는 분들은 왜 저녀들이 게임에 과몰입하고 중독에 빠지는 환경에 처해있는지에 대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의 놀이문화에 대한 관심의 부재가 낳은 결과라고 확신합니다. 교육열에 반비례하는 놀이문화에 대한 무관심은 청소년-어린이들을 영혼을 더욱 피폐하게 만듭니다.
:: 만일 이 사진에서 오른쪽에 아빠만 쏙 빠지면 어떤 느낌이 들까? ::
아이들의 권리와 어른의 의무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4월 국회로 연기 되면서 게임법 개정안이나 청보법 그 어떤 것도 100% 확정된 항목은 없습니다. 통과와 보류와 번복되어가면서 사태가 어떻게 흐를 지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게임은 분명히 재미있고 즐거운 '엔터테인먼트 도구'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입니다. 아이들은 이것을 즐길 권리가 있으며 어른들은 아이들이 바르게 향유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성부가 만들려는 정책은 엄연한 문화산업을 악(惡)으로 단정하고 억압하려는 동시에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을 통제도, 조절-관리조차 못하는 무능한 존재로 인정하는 꼴입니다. 너무 극단적인 표현인가요?
정부는 업계와 적대하기 보다는 산업 진흥과 보호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야 합니다. 동시에 가정이 올바르게 향유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게임을 만드는 업계도 가정사회, 정부와도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방학 때 동시접속자수 40만명 돌파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 어떤 즐거움과 유익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절제력이 부족한 아동-청소년들을 지나친 과몰입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업계의 올바른 개발 철학,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의 관심이 잘 어울러져서 성숙한 산업이 완성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추가로, 게임의 속성과 자율과 이를 통제하려는 관료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김국현님의 컬럼을 공유합니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