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재즈 라이프] 살아있는 한국 재즈의 전설들
2011. 3. 31. 06:58ㆍcinema
고교 졸업 후 스무살이 되던 제게 재즈(Jazz)라는 음악이 문득 찾아왔던 때가 기억납니다. 클래식을 비롯해서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즐겨 들으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랑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도 아버지의 서재는 2,000여장의 LP와 CD로 도배되어 있죠) 지금도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지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우아하지만 다가기 어려운 음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피아노를 좋아하던 즐겨 치던 저는 Bill Evans에 흠뻑 빠져들게 되면서 어렵기만한 재즈가 조금씩은 익숙해져 갔습니다. 재즈는 어렵긴하지만 매력적이고 알아갈 수록 재미가 깊어지는 음악이라는 걸 실감할 수있었죠.
요즘은 국내에도 재즈 보컬들이 적잖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나윤선, 말로, 웅산으로 불리는 국내 여성 재즈 트로이카로 불리는 보컬리스트들이나, 서울 곳곳의 재즈 클럽들을 누비며 자유롭게 연주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흔적에는 과거 '재즈 1세대라'는 선구자들이 홀로 걸어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국내 재즈 입문서와도 같은 만화 Jazz it up으로 유명한 재즈 칼럼리스트 남무성이 감독으로 첫 데뷔한 다큐멘터리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국내 재즈 1세대의 발자취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사실 지난 겨울에 시사회를 통해 관람을 했는데 리뷰가 늦어졌네요) 국내 재즈계에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이들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특성상 흥행과는 거리가 먼 탓인지 입소문이 많이 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워낭소리와 같은 반향을 일으키길 기다렸는데 말이죠. orz
이 영화는 국내 재즈 1세대 연주자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을 비롯해서, 재즈 보컬리스트의 대모로 불리는 박성연 등 제게도 익숙한 아티스트들이 직접 출연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SBS의 연예프로그램 스타킹에 출현해서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만 이들이 걸어온길이 정말 녹록하지많은 않던 것이 영화에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한편으로는 가슴 아프기도 했습니다.
외롭고 괴로울 때면,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난 블루스를 더 잘 부를 수 있게 될거야.' -박성연
내가 언제 사람이 되나, 음악을 잘해야 사람이 되는구나, 나는 나팔쟁이 피노키오니까. -이동기
요즘 음악은 죽이는 맛이없어! 거장이 아니고 그지지 ! 나는 부자안부러워 재즈 뮤지션이니깐! 재즈, 그게 인생이지~ -류복성
영화 내내 흐르는 1세대들의 주옥같은 명대사들 조차도 그들이 평생을 얼마나 재즈에 바쳐왔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등장인물 모두가 하나같이 겸손하고 부드러운 모습과 함께 2세대들이 보는 선배에 대한 존경심도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덧붙여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보컬리스트 웅산의 등장도 반가웠습니다. =)
늘 고독과 싸워왔던 이들은 후배들에게 '외로움'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독백이 아직도 가슴을 울립니다. 제가 과대 해석하는게 아니라면, 이 영화는 재즈 1세대 뿐 아니라 불모의 개척지를 일구어가는 모든 분야의 1세대들에게 바치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대부분이 불모지의 꿈에 도전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며 안전한 길을 택하니까요. 이 글을 쓰는 저 역시도 마찬가지라, 영화를 보는 내내 놓고 싶고, 잊고 지내던 꿈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아이돌과 가요가 판을치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에 다양성이 정착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지금도 현역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1세대 들에게 존경심과 응원을 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