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게임의 역사 (16) 아타리의 도전, 2세대 콘솔

2012. 12. 18. 07:36콘솔게임의 역사


    :: 아타리는 기출시되던 슈퍼퐁, 울트라퐁을 비롯해 스턴 서클 등 10가지 게임들을 카트리지로 구성해서 첫 2세대 콘솔, 게임브레인(Game Brain)을 출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게임들은 당시 경쟁사인 페어차일드의 채널F에 비해 너무 구식이었기 때문에 출시가 취소되었고, 오늘날 몇몇 시제품만 남겨두고 있다. ::

    (지난 시간에 이어서)

    아타리의 차세대 프로젝트, 스텔라(Stella)

    아타리의 R&D 부서는 페어차일드가 최초의 2세대 게임기라고 부를 수 있는 ROM 카트리지 방식의 채널F를 출시하기 몇년 전부터 퐁(Pong)을 넘어설 차세대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차세대 게임기의 목표는 하나의 기기에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퐁의 개발을 선두지휘하던 앨런 알콘(Al Alcorn)은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그 시기엔 게임 개발하는데 비용적인 부담이 커지고 매 게임마다 변형된 칩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카트리지 기반의 시스템 개발은 더욱 그랬죠. 그래서 하나의 기기에 여러가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 개발이 필요해졌습니다." - Al Alcorn [각주:1]

    :: Steve Mayer ::

    당시 인텔 8080이나 모토로라 6800과 같이 차세대 게임기 개발에 적합한 8비트 프로세서들은 단가가 $100~300에 이르는 고가였습니다. 소비자가를 맞추기 위해선 비용적인 부담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이 난관은 부쉬넬과 알콘이 Ampex에 재직하던 시절에 함께 일하던 스티브 메이어(Steve Mayer) 론 밀너(Ron Milner)사이언 엔지니어링(Cyan Engineering)팀이 아타리에 가담하면서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 Chuck Peddle ::

    1975년 9월경, 스티브와 론의 사이언팀은 MOS 6502 프로세서를 만든 모토로라 출신의 엔지니어 척 페들(Chuck Peddle)을 찾아갑니다. 척은 모토로라 재직 당시 6800 보다 더 저렴한 양산형 프로세서 개발을 제안했지만 모토로라는 척의 제안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원하던 6800 기반의 프로세서를 개발하기 위해서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척을 기용한 MOS Technology는 MOS 65xx 시리즈를 완성하게 되는데요, 이 프로세서의 단가는 모토로라 6800 이나 인텔 8080 프로세서의 15%에 불과했습니다. 척을 만난 사이언 팀은 이틀에 걸쳐 아타리 차세대 콘솔 시스템에 대해 논의을 진행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MOS 6502 프로세서를 $8 단가에 구입하기로 합의합니다. 구상중인 차세대 콘솔 사양에 적합한데다, 기존의 동전투입방식의 게임기에도 최적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같은해 12월경, 아타리 R&D 부서에 유능한 엔지니어 Joe Decuir가 영입되면서 차세대 콘솔 프로젝트는 스텔라(Stella)[각주:2]라는 이름으로 첫 프로토타입을 완성합니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MOS 6502 기반의 커스텀 보드와, 6V 전원장치, 컨트롤러는 Kee Games의 동전투입방식 아케이드 게임기 'Tank'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고안되었습니다.

    :: 스텔라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 컨트롤러는 아케이드용 탱크 게임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

    아타리의 실수? 애플 컴퓨터와 스티브 잡스

    돌아보면 MOS 6502 프로세서 만큼 반도체 역사에 큰 궤적을 남긴 프로세서도 드물겁니다. 당시 아타리의 앨런 알콘에게 MOS 6502를 기반으로 만든 개인용 컴퓨터 프로토타입을 들고 찾아온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 최근까지 아타리에 재직중이던 괴짜 히피족 청년이었습니다. 동시에 HP에서 근무하던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의 도움으로 아타리의 히트작 벽돌깨기(Breakout)을 단 사흘만에 완성해서 아타리 사내를 발칵 뒤집은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퐁(Pong)과 같은 페들을 돌리는 형태의 게임이 세간에서는 이미 인기가 한풀 꺾였다고 인식하던 시절, 놀란 부쉬넬과 Steve Bristow는 벽돌을 부수는 형태의 1인용 퐁(Pong)을 고안합니다. 개발 단계에 들어가면서 알콘은 때마침 재직중이던 스티브 잡스에게도 칩 50개 미만으로 이 프로그램을 완성하면 성과금 $750 를 지급하고, 줄어든 칩의 개수에 비례해서 $100의 보너스를 추가로 지급하는 조건을 제안합니다. 비록 잡스는 뛰어난 엔지니어가 아니었지만, 당시 아타리를 자주 놀러오던 잡스의 친구 워즈니악의 존재를 인식하고 제안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잡스는 나흘만에 완성하겠다고 약속하고 곧바로 워즈니악에게 연락해, 성공시 받게 되는 성과금을 절반으로 나누자는 조건하에 아타리의 새 게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각주:3] 당시 게임을 프로그래밍 하려면 두달 가까이 걸리는데 반해, 뛰어난 엔지니어였던 워즈니악은 고작 사흘 만에 칩 45개로 게임을 완성합니다. 역사적인 벽돌깨기(Breakout)는 그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 아타리의 벽돌깨기 게임. 오른쪽은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창업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

    그 후 워즈니악은 HP에 근무하면서 MOS 6502 프로세서를 이용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냅니다. 키보드로 입력하면 화면에 글자가 출력되는 혁명적인 기계였습니다. 잡스는 워즈니악을 설득해 인쇄 회로 기판(PCB)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하자고 제안했지만, 워즈니악은 윤리적인 이유로 재직중인 HP에 먼저 고안물을 보여주게 됩니다. 하지만 HP는 자사의 사업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상품 개발을 거절하게 되고,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각자의 회사에서 나와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제품을 납품해서 판매해줄 곳을 찾는 것이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개인용 컴퓨터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워즈니악이 가입한 홈브루 컴퓨터 클럽의 회원들 조차도 컴퓨터광의 취미로 만들어진 기계일 뿐 사업 아이템으로 바당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바이트 숍'이라는 컴퓨터 상점을 운영해온 '폴 테럴'은 이들의 제품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판매 계약을 맺게 되지만 다음 문제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부품 비용으로 $15,000 가까이 필요했습니다. 당장 현금이 없던 스티브 잡스는 부품이나 자금을 지원해줄 스폰서를 물색하게 됩니다. 그렇게 최근까지 재직하던 아타리의 앨런 알콘을 찾아오기에 이른 것입니다. 아타리도 때마침 같은 MOS 6502 프로세서를 차세대 콘솔 개발과 동전투인 방식의 아케이드 게임기에 적용하려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스티브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아타리에 재직하던 시절에 좋아하던 사원이었기 때문에, 다른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을 소개해줬습니다."[각주:4] - Al Alcorn

    아타리 역시 이들의 개인용 PC가 '컴퓨터광이 만든 훌륭한 기계'일 뿐 사업으로 확장 할만큼 비전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잡스가 현금으로 선불로 지급하지 않는 한, 부품 칩을 판매하거나 투자해줄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애플 컴퓨터는 개인용 PC 시장을 개척하게 되었고, 아타리로서는 몇년 뒤 가정용 PC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그 때 자신에게 왔던 큰 기회를 놓쳐버린 것을 아쉬워하지 않았을까요?

    ::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그 때 아타리가 애플I 프로토타입을 보고 받아들였다면 오늘날 IT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

    아타리,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

    가정용 퐁(Pong)의 폭발적인 인기로 아케이드 시장의 인기를 가정용 게임기 시장으로 이어간 아타리지만, 이듬해인 1976년에 General Instrument가 발매한 AY-3-8500 칩으로 Pong류의 게임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여러 회사들이 복제품들이 양산해 헐값에 팔아치우기 시작합니다. 아타리는 Pong Double, Super Pong, Quadra Pong등 여러가지 변형된 퐁 시리즈를 연이어 출시하지만 퐁의 판매 둔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소비자들은 퐁을 넘어선 새로운 게임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아타리의 1975-1976 회계보고에 의하면 $350만 영업이익, $3,900만 매출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모습의 이면에는 치고 올라오는 경쟁사들에 대한 부담이 컸습니다. 또한 스텔라 개발을 위한 투자 비용이 연간 $100,000에 달하며 개발비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차세대 게임기의 빠른 결과물이 나오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스텔라 완성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이 필요했니다. 놀란 부쉬넬은 벤처 캐피탈리스트 돈 벨런타인(Don Valentine)을 찾아가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한 자문을 요청했고, 그는 아타리를 구입해줄 회사를 찾아보라고 권유 합니다.

    "급속히 성장하는 사업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자본을 잠식합니다. 월가는 우리 제품들이 반짝 뜨다 말게 될 사업일지, 장기적으로 전망이 좋은 사업일지 결정하는데 난항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본을 확보하기 굉장히 힘겨워졌고, 쉽게 변하는 소비자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탄탄한 자본력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각주:5] - Nolan Bushnell

    1976년, 아타리는 워너 커뮤니케이션(Warner Communications)에 $2,800만 금액으로 매각됩니다. 지분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던 놀란 부쉬넬은 단숨에 $1,500만을 가진 억만장자가 되었고, 워너는 놀란 부쉬넬을 아타리의 CEO로 유지한채 스텔라 개발에 아낌없는 지원사격을 펼칩니다. 가장 큰 문제였던 자본 문제를 해결하면서 아타리는 스텔라 개발에 박차를 가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참고 자료]
    High score!: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스티브 잡스(Steve Jobs) - 월터 아이작슨 저
    http://classicgaming.gamespy.com/View.php?view=Articles.Detail&id=401
    http://www.gamasutra.com/view/feature/2000/the_history_of_atari_19711977.php?page=13
    http://en.wikipedia.org/wiki/Atari_2600


    1. High score!: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p.36) [본문으로]
    2. 스텔라(Stella)는 Joe Decuir가 타던 프랑스 자전거 브랜드 이름에서 따왔다. [본문으로]
    3. 하지만 잡스는 추가 보너스를 받는 사실을 숨기고 워즈니악에게 성과금의 일부만 전달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 월터 아이작슨 저> [본문으로]
    4. 애플은 아타리의 소개로 벤처 캐피탈리스트 중 '돈 벨런타인'을 만나게되었고, 초대 회장 마이크 마큘라를 영입하게 된다. [본문으로]
    5. C/Net News.com “The return of King Pong” by David Becke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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