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나복스(Magnavox)는 1917년에 설립되어 1974년에 필립스(Philips)에 인수되기까지 한 시대를 풍미해온 전자 회사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랄프 베어의 브라운박스가 여러 전자 회사들에게 외면을 받아왔지만, 마그나복스에 의해 극적으로 라인선스 계약을 체결하게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랄프베어의 브라운 박스와 마그나복스와의 첫 인연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72년 5월에 첫 결실을 맺게 됩니다. 전국의 마그나복스 딜러들이 새로운 기계를 보기 위해 포트웨인으로 모여듭니다. 브라운박스는 이제 '오디세이(Odyssey)'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사표를 던지면서 비디오게임 산업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로 3달 뒤인 8월, 미국 전역에 마그나복스 오디세이가 정식으로 출시됩니다. 비디오게임 하드웨어의 정식 가격은 $75로 하드웨어 시스템, 2개의 컨트롤러, 케이블, 3개의 카트리지와 액세서리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오디세이의 하드웨어는 순수한 아날로그 회로로, 40개의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콘덴서, 저항기 등의 개별 소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아직 음성은 물론, 하드웨어 효과음 조차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는 완벽한 디지털 방식이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이 혼합된 형태였는데요, 훗날 랄프 베어는 오디세이 개발 당시에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식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동봉된 6종의 게임 카트리지에 게임들이 담겨져 있었고, 이후에 추가로 출시된 게임들은 별도로 구매하는 형태였습니다. 이제 겨우 콘솔 산업 초창기다보니 소프트를 동봉해서 판매되는 게 보통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물가로 $75은 상당히 고가였을 테니까요.
  

 
오디세이에서 가장 재미난 점은 바로 '스크린 오버레이(Screen Overlays)'라는 반투명한 필름이 아닐까 싶은데요, 박스에 게임 카트리지와 함께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오디세이는 3개의 스팟(spot)을 출력해서 컨트롤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아주 단순한 구조였기 때문에 그래픽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버레이를 부착하면 게임의 몰입도가 더욱 배가되었던 것이죠. 당시 광고 영상을 보시면 단번에 그 용도를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
  

:: 출시 당시의 오디세이 TV 광고 ::
 
  
  

:: 주변기기였던 라이플과 슈팅 갤러리 세트 ::

:: 슈팅 갤러리용 오버레이들. 총 4개의 게임이 존재 했다 ::

오디세이는 주변기기도 함께 판매했습니다. 초창기 프로토타입인 브라운 박스 시절에 만든 라이트 건(Light Gun)을 개량한 라이플(riftle)을 동봉해 SHOOTING GALLERY 팩을 출시했습니다. 화면상에 스팟이 나타나면 스크린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서 맞추는 아주 단순한 구조의 슈팅 게임이었죠. 표적을 조준하는 기능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볼 때 굉장히 허술한 주변기기였지만 당시에는 이 자체만으로도 게임을 즐기는데 큰 만족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
  
  

:: 슈팅 갤러리 시연 영상 (고전 콘솔게임 리뷰들이 AVGN 컨셉을 많이 이용하네...) ::
 
  
마그나복스는 오디세이를 출시하면서 마케팅과 광고에도 집중합니다. 실제로 발표 후 미국 전역에 출시되기까지 3개월의 기간이 소요되었던 것은 바로 이런 준비 기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청만을 목적으로 하던 TV가, 사용자와 인터렉티브하게 즐기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심어지면서 미국 전역과 전국민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최초의 비디오게임 오디세이는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발매된 1972년 첫해에만 10만대 이상을 판매[각주:1]했고 주변기기 슈팅 갤러리 팩은 2만개 이상의 판매고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산된 1975년도까지 약 35만대의 총판매량을 달성하게 됩니다.
  
::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광고지 ::::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광고지 ::
하지만 마그나복스는 한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게임기와 동시에 TV를 만드는 전자회사임을 잊고 있었던 것이죠. 많은 소비자들이 오디세이가 마그나복스 TV 전용의 게임기로 혼동하게 되었습니다. 마그나복스가 아닌 다른 회사의 TV를 가지고 있던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자신의 TV와 호환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구매결정을 피하기도 했습니다.[각주:2] 그당시에 광고를 하면서 마그나복스의 TV 뿐 아니라, 모든 TV에서도 이용 가능함을 강조했었더라면 더 큰 판매량을 달성했을 것이고 선구자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오디세이의 전세계 특허 목록. 리스트에는 없지만 싱가폴에도 수출(모델명 YE7100BK13)했다. ::

:: 더욱 정감있는 오디세이의 독일 패키지. ::

또한, 마그나복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유럽과 전 세계 해외시장에 수출하게 되지만 그만큼 많은 '짝퉁'들을 양산하기도 했습니다. 선구자답게 최초의 비디오게임기인 동시에 게임산업 최초로 전세계에 특허를 냈으며, 게임산업 최초로 법정 소송을 겪기도 했습니다.
  
  

마그나복스에게는 도박과도 같던 오디세이는 이제 비디오게임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게 됩니다. 랄프 베어가 그의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정이 드디어 큰 결실을 맺게 되었죠. 그리고 그는 오늘날 비디오 게임의 선구자로서 생애에 정점을 찍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랄프 베어는 마그나복스를 나와서 계속해서 여러 게임기를 발명했습니다. 게임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데요, 특히, 패턴 맞추기용 전자 게임 시몬(Simon)역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됩니다.



:: 랄프 베어의 또 다른 발명품, 게임기 시몬(Simon) ::
 
 

이미 역사는 시작되었다.

 
마그나복스가 1975년까지 승승장구 하고 있을 때, 이미 한 명의 사업가는 동전 투입 방식의 아케이드용 게임기를 비슷한 시기에 발명해서 미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마그나복스는 알고 있었을까요? 자신들이 만든 오디세이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멋진 산업을 열었는지. 이제부터 수 많은 후발주자들이 게임산업에 뛰어들면서 무한 경쟁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오늘날, 오디세이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 It's my Turn! ::

 
[참고 문헌]
  
High score!: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http://www.ralphbaer.com/video_game_history.htm
http://www.pong-story.com/odyssey.htm#P7
http://www.giantbomb.com/ralph-baer/72-89698/
http://www.old-computers.com/museum/photos.asp?t=1&c=883&st=2
http://www.computercloset.org/MagnavoxOdyssey.htm



  1. 첫 해 판매량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대략 10~13만대 사이로 측정된다. [본문으로]
  2. 덕분에 3년 뒤에 아타리(ATARI)가 가정용 게임기 PONG을 출시하면서 전세계모든 흑백TV와 호환됨을 강조하는 계기가 된다.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moneyamoneya.tistory.com BlogIcon 머니야
    2011.03.21 08:29

    국내출시된 최초의 비됴겜은 오트론 였던것 같아요~ 제가 초딩3년때니깐..35년전 같군요..^^ 좋은글 잘보구 갑니당^^

    • Favicon of https://gamelog.kr BlogIcon 소원™
      2011.03.21 09:20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말씀하신 오트론은 'PONG'류의 게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계 각지에 비슷한 게임기가 다른 이름으로 많이 출시되어서 특허문제가 가시화 되기도 했었구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2. sweet
    2011.03.29 01:18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게임 역사에 대해 조사하던 중에 좋은 글을 만났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 Favicon of http://wiinemo.tistory.com BlogIcon WiiNemo
    2011.03.30 01:47

    앗 오디세이군요. 드디어 게임계의 유명인사(?)들이 등장한 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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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랄프 베어는 TV와 게임기를 연결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

 
 
 
 
 
미국의 유능한 발명가이자 엔지니어인 랄프 베어(Ralph H. Baer)는 TV와 게임이 서로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확신했으며 근 미래에 사업 가능성을 내다 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선견과 확신이 오늘날 '비디오 게임의 선구자'로 있게 해주었습니다. 랄프 베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TV 엔지니어 기술자 자격증을 취득했는데요, TV 수신기를 구축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전자 회사 'Loral'에 근무하던 1951년 당시부터, 여러 민간 군수 기업들을 전전하면서 TV 엔지니어로서 기술을 인정받아왔지만, 일찍부터 TV를 다른 형태로 활용하는데 가장 관심이 컸습니다. 이미 1950년대 초부터 게임과 TV를 연결해서 즐기는 방향에 대해서 구상해왔다고 합니다.
  
제가 그 시기에 TV를 이용한 게임기 형태를 구상하고 제안할 때마다 주위에서는 늘 비관적인 반응만 보였습니다. 결국 이야기를 꺼내면 그걸로 끝이었죠.
 
그렇게 15년이 지나고 또 다른 민간 군수 기업으로 회사를 옮긴 랄프 베어는, 자신의 업무가 점점 TV 엔지니어 기술직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실감하며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비디오 게임기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는 결국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결국 1966년 9월 1일, 뉴욕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평상시 처럼 노트를 끄적이던 그는 작정하고 4페이지에 이르는 TV 게임 설계도를 도안하기 시작했고, 5일 만에 평소 구상해오던 아이디어의 개략도와 함께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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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스템의 첫번째 과제는 영상 신호를 디스플레이에 출력 하는 것이었습니다. 랄프 베어는 3번 또는 4번 채널의 안테나 입력 단자를 선택하게 되는데요, 그의 이 결정은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비디오게임기에서 통용되는 표준 방식과도 같이 정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부서의 기술자로 있던 Bob Tremblay가 참여해 진공관을 이용한 디바이스를 만들었고, 스크린상에 두개의 점(spot)을 움직일 수 있게 구현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 초창기에 2개로 구현한 스팟은 3개로 늘어났고, 컨트롤러도 3개까지 쓸 수 있게끔 확장됐다. 사진은 3번째 컨트롤러 'light gun'이 포함된 그들의 비디오게임 시스템 '브라운 박스' 현재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

이 위대한 첫 걸음을 통해 쫓고 도망가는 'chase' 형태의 게임을 구현하게 됩니다. Fox and Hound 로 불리는 그의 첫 chase 게임은, 하나의 스팟을 사냥의 대상인 여우로 정하고, 다른 하나의 스팟을 사냥개나 사냥꾼으로 플레이해서 목표물을 사냥하거나 도망다니는 게임으로 구현합니다. 무척 단순했지만 그 당시엔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고 합니다. =)
  
랄프 베어의 이 최초 프로토타입 게임기는 사내에서 비공개로 끝났지만, 이후로도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규모를 확장하게 됩니다. 이듬해인 1967년에는 Sanders Associates사에서 만난 Bill HarrisonBill Rusch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스팟을 3개로 구현하는 Ping-Pong 게임을 구상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3년 뒤인 1969년, 이들은 비디오게임 하드웨어와 함께 2~3개의 게임 데모를 완성하게 됩니다.
  

:: 1969년, 랄프 베어와 빌 헤리슨이 핑퐁 게임을 직접 시연하는 영상. ::
 
랄프 베어는 이 프로토타입 게임 시스템에 '브라운박스(Brown Box)'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되는데요, '브라운관'으로 불리는 TV에 걸맞는 친근한 이름이었습니다. 브라운 박스에 여러 TV들을 연결해서 테스트 및 시연에 성공하게 되는데, RCA, GE, Zenith, Sylvania, Magnavox, Warwick 등 미국에 출시된 대부분의 TV 회사 제품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랄프 베어는 이제 브라운 박스의 상용화를 앞두고 각 TV 회사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채결하기 위해 여러 전자 회사를 전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1969년 봄까지는 오직 RCA만이 이 재미난 갈색 상자에 관심을 보였고 라이선스 체결까지 이야기가 진행됐지만 결국 취소되었습니다. 최초의 TV 게임기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아직 랄프 베어에게는 기회가 남아있었습니다.
  
우리는 운이 좋았습니다. RCA의 일원이던 Bill Enders가 퇴사하고, 같은 TV 회사인 마그나복스(Magnavox)사의 뉴욕지점 마케팅 부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죠. 그는 RCA 시절부터 우리 게임기에 감명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 지금은 필립스에 흡수됐지만, 한시대를 풍미한 TV회사였다. ::

랄프 베어는 빌 엔더스(Bill Enders)의 추천으로 인디아나주 포트웨인에 있는 마그나복스의 본사에서 브라운 박스를 시연하게 됩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그의 말에 따르면 넓은 방에 마그나복스의 경영진들이 모두 모여서 브라운 박스 시연을 보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별 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큰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던 마케팅 총괄 부사장 제리 마틴(Jerry Martin)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브라운 박스에 큰 감명을 받게 되었고 사업 가능성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브라운 박스와 함께 가겠습니다.
 
때는 1970년 7월 17일, 포트웨인의 한 사무실에서 비디오게임(콘솔) 산업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Brown Box's Light Gun ::

 
[참고 문헌]

High score!: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http://www.ralphbaer.com/video_game_history.htm
http://www.giantbomb.com/ralph-baer/72-89698/
 
  1. Favicon of http://lineni.com BlogIcon 리넨
    2011.03.08 21:47

    역시 새로운 것은 처음엔 거절당하는군요 ㅜ_ㅜ;

  2. Favicon of http://osten.co.kr BlogIcon osten
    2011.03.09 20:02

    드디어 첫번째 비디오 게임기가 나왔군요.

  3. Favicon of http://wiinemo.tistory.com BlogIcon WiiNemo
    2011.03.10 00:49

    핑.퐁.핑.퐁~
    이제 본격적인 비디오 게임 시장의 시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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