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게임의 역사 (5)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2011. 3. 18. 07:07콘솔게임의 역사

     
      
      
      
      
      
    마그나복스(Magnavox)는 1917년에 설립되어 1974년에 필립스(Philips)에 인수되기까지 한 시대를 풍미해온 전자 회사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랄프 베어의 브라운박스가 여러 전자 회사들에게 외면을 받아왔지만, 마그나복스에 의해 극적으로 라인선스 계약을 체결하게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랄프베어의 브라운 박스와 마그나복스와의 첫 인연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72년 5월에 첫 결실을 맺게 됩니다. 전국의 마그나복스 딜러들이 새로운 기계를 보기 위해 포트웨인으로 모여듭니다. 브라운박스는 이제 '오디세이(Odyssey)'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사표를 던지면서 비디오게임 산업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로 3달 뒤인 8월, 미국 전역에 마그나복스 오디세이가 정식으로 출시됩니다. 비디오게임 하드웨어의 정식 가격은 $75로 하드웨어 시스템, 2개의 컨트롤러, 케이블, 3개의 카트리지와 액세서리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오디세이의 하드웨어는 순수한 아날로그 회로로, 40개의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콘덴서, 저항기 등의 개별 소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아직 음성은 물론, 하드웨어 효과음 조차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는 완벽한 디지털 방식이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이 혼합된 형태였는데요, 훗날 랄프 베어는 오디세이 개발 당시에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식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동봉된 6종의 게임 카트리지에 게임들이 담겨져 있었고, 이후에 추가로 출시된 게임들은 별도로 구매하는 형태였습니다. 이제 겨우 콘솔 산업 초창기다보니 소프트를 동봉해서 판매되는 게 보통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물가로 $75은 상당히 고가였을 테니까요.
      

     
    오디세이에서 가장 재미난 점은 바로 '스크린 오버레이(Screen Overlays)'라는 반투명한 필름이 아닐까 싶은데요, 박스에 게임 카트리지와 함께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오디세이는 3개의 스팟(spot)을 출력해서 컨트롤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아주 단순한 구조였기 때문에 그래픽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버레이를 부착하면 게임의 몰입도가 더욱 배가되었던 것이죠. 당시 광고 영상을 보시면 단번에 그 용도를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
      

    :: 출시 당시의 오디세이 TV 광고 ::
     
      
      

    :: 주변기기였던 라이플과 슈팅 갤러리 세트 ::

    :: 슈팅 갤러리용 오버레이들. 총 4개의 게임이 존재 했다 ::

    오디세이는 주변기기도 함께 판매했습니다. 초창기 프로토타입인 브라운 박스 시절에 만든 라이트 건(Light Gun)을 개량한 라이플(riftle)을 동봉해 SHOOTING GALLERY 팩을 출시했습니다. 화면상에 스팟이 나타나면 스크린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서 맞추는 아주 단순한 구조의 슈팅 게임이었죠. 표적을 조준하는 기능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볼 때 굉장히 허술한 주변기기였지만 당시에는 이 자체만으로도 게임을 즐기는데 큰 만족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
      
      

    :: 슈팅 갤러리 시연 영상 (고전 콘솔게임 리뷰들이 AVGN 컨셉을 많이 이용하네...) ::
     
      
    마그나복스는 오디세이를 출시하면서 마케팅과 광고에도 집중합니다. 실제로 발표 후 미국 전역에 출시되기까지 3개월의 기간이 소요되었던 것은 바로 이런 준비 기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청만을 목적으로 하던 TV가, 사용자와 인터렉티브하게 즐기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심어지면서 미국 전역과 전국민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최초의 비디오게임 오디세이는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발매된 1972년 첫해에만 10만대 이상을 판매[각주:1]했고 주변기기 슈팅 갤러리 팩은 2만개 이상의 판매고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산된 1975년도까지 약 35만대의 총판매량을 달성하게 됩니다.
      
    ::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광고지 ::::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광고지 ::
    하지만 마그나복스는 한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게임기와 동시에 TV를 만드는 전자회사임을 잊고 있었던 것이죠. 많은 소비자들이 오디세이가 마그나복스 TV 전용의 게임기로 혼동하게 되었습니다. 마그나복스가 아닌 다른 회사의 TV를 가지고 있던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자신의 TV와 호환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구매결정을 피하기도 했습니다.[각주:2] 그당시에 광고를 하면서 마그나복스의 TV 뿐 아니라, 모든 TV에서도 이용 가능함을 강조했었더라면 더 큰 판매량을 달성했을 것이고 선구자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오디세이의 전세계 특허 목록. 리스트에는 없지만 싱가폴에도 수출(모델명 YE7100BK13)했다. ::

    :: 더욱 정감있는 오디세이의 독일 패키지. ::

    또한, 마그나복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유럽과 전 세계 해외시장에 수출하게 되지만 그만큼 많은 '짝퉁'들을 양산하기도 했습니다. 선구자답게 최초의 비디오게임기인 동시에 게임산업 최초로 전세계에 특허를 냈으며, 게임산업 최초로 법정 소송을 겪기도 했습니다.
      
      

    마그나복스에게는 도박과도 같던 오디세이는 이제 비디오게임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게 됩니다. 랄프 베어가 그의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정이 드디어 큰 결실을 맺게 되었죠. 그리고 그는 오늘날 비디오 게임의 선구자로서 생애에 정점을 찍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랄프 베어는 마그나복스를 나와서 계속해서 여러 게임기를 발명했습니다. 게임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데요, 특히, 패턴 맞추기용 전자 게임 시몬(Simon)역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됩니다.



    :: 랄프 베어의 또 다른 발명품, 게임기 시몬(Simon) ::
     
     

    이미 역사는 시작되었다.

     
    마그나복스가 1975년까지 승승장구 하고 있을 때, 이미 한 명의 사업가는 동전 투입 방식의 아케이드용 게임기를 비슷한 시기에 발명해서 미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마그나복스는 알고 있었을까요? 자신들이 만든 오디세이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멋진 산업을 열었는지. 이제부터 수 많은 후발주자들이 게임산업에 뛰어들면서 무한 경쟁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오늘날, 오디세이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 It's my Turn! ::

     
    [참고 문헌]
      
    High score!: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http://www.ralphbaer.com/video_game_history.htm
    http://www.pong-story.com/odyssey.htm#P7
    http://www.giantbomb.com/ralph-baer/72-89698/
    http://www.old-computers.com/museum/photos.asp?t=1&c=883&st=2
    http://www.computercloset.org/MagnavoxOdyssey.htm



    1. 첫 해 판매량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대략 10~13만대 사이로 측정된다. [본문으로]
    2. 덕분에 3년 뒤에 아타리(ATARI)가 가정용 게임기 PONG을 출시하면서 전세계모든 흑백TV와 호환됨을 강조하는 계기가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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