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게임의 역사 (3) 새시대의 서막을 알린 스페이스워(Spacewar!)

2011. 2. 25. 19:40콘솔게임의 역사

    :: 전자게임의 역사를 연 컴퓨터, PDP-1 ::

     
      
      
    지난 시간에 최초의 비디오게임으로 소개한 테니스 포 투(Tennis for Two)는 사실상 게임산업이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1980년대에 뒤늦게 발견되면서 재조명 받게 된 케이스였습니다. 오늘날 테니스 포 투가 최초의 비디오게임으로서 인정 받고 있다지만[각주:1] 게임산업이 일어나는데 그닥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점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반면에 지금부터 소개할 이 게임은 게임산업을 일으킨 선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이들에게 끼친 영향력 때문에 최초의 게임이라 불리는데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 Steve "Slug" Russell ::

    1962년
    , 미국의 MIT 공대에 최신 컴퓨터 PDP-1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 PDP-1은 당시에 종이 테이프나 천공카드로 입출력 하던 방식에서 오늘날의 모습과 흡사한 모니터와 키보드가 입출력을 담당하는 혁신적인 컴퓨터인 동시에 전자 게임과 해커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당시 MIT에 있던 스티브 러셀(Steve "Slug" Russell)과 그의 동료들은 이 흥미로운 PDP-1 기계를 가지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의욕에 불타 오르게 되었음은 두 말의 여지가 없었겠죠.
      
    이들은 디스플레이에 그래픽을 표현하는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되었는데요, 이 당시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최초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성공한 해이며,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진출과 경쟁이 심화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자연스럽게 우주 공간에서의 전투를 다루는 미래형 게임을 구상하게 됩니다. 소설가 E. E. SmithThe LensmanSkylark 시리즈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이 게임은 '테니스 포 투'와 마찬가지로  2인이 대전하는 방식의 게임이었 습니다. 플레이어는 Needle(바늘)과 Wedge(쐐기)라는 이름을 붙인 두 로켓들[각주:2]을 조종해서 미사일을 발사해 상대방을 먼저 맞추면 게임에서 승리하는 형태였죠.
      
      
     
      

    :: Needle 과 Wedge의 대결 ::

    그렇게 탄생한 스페이스워(Spacewar!)의 초기버전은 배경음도 없고, 로켓이 폭발할 때는 별다른 그래픽 효과 조차 없이 간단했기에 지금 시대에 겉보기 만으로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게임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상당히 혁신적으로 게임을 디자인하고 프로그래밍 했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이 게임에 '현실성(realistic)'에 대한 개발자들의 고찰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일겁니다.
      
    스티브 러셀이 처음에 우주의 배경표현을 할 때 단순한 도트의 랜덤 나열로 했지만, 한 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다며 작은 은하계를 표현[각주:3]하도록 다시 프로그래밍 하게 됩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다른 동료에 의해 중력 센서가 추가되고, 시스템 영역을 벗어날 때를 대비한 경보장치와 랜덤한 공간 이동과 시스템을 추가하는 등 수시로 게임을 업데이트 하게 됩니다.
      
    현실성에 대한 고민이 담긴 만큼, 스페이스워는 컨트롤하기 꽤 힘든 게임이었습니다. 우주공간이기 때문에 한쪽으로 가속을 주면 관성으로 인해 역추진하기 전까지는 절대 로켓이 멈추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을 맞추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이는 화면 중앙에 배치된 큰 별을 중심으로 중력이 작용해서 미사일이 휘는 등 프로그래밍 되었습니다.
     
    50여년전부터 이정도로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한데요, 그당시 스티브 러셀과 함께 개발에 참여한 J.M. Graetz가 1981년에 Creative Computing Magazine에 기고했던 내용[각주:4]에 따르면 그들이 스페이스워를 개발하면서 어떤 개발 철학을 가지고 있었는 지 확인할 수 있으며, 오늘날의 게임 디자이너들에게도 큰 교훈을 줄 것입니다.
     
    1. 시스템의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잘 이끌어 낼 것.
    2. 일관된 프레임워크(뼈대)안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하고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어야 함.
    3. 대중에게 친근해야 하며 즐거움을 주는 게임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
     
    컴퓨터는 역사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어두운 과거와 함께 시작했기 때문에, 당시 컴퓨터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에게는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악마의 기계가 아니라 인간에게 가깝고 친근한 기계임을 입증해야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스페이스워는 MIT에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됩니다. 게다가 PDP-1을 보유하고 있는 전국의 대학가로 퍼지면서 크게 유명세를 타기에 이르죠. 이 게임은 최초의 소스로부터 수년간에 걸쳐 여러 개발자들의 참여를 통해 살을 입히고 오늘날까지도 자유소프트웨어 진영에서 다양한 형태의 게임들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그 영향력이 어떤 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50년이 다되어가는 오늘날까지도 스페이스워는 진행형이다. 영상은 'KSpaceDuel' ::

    전자 게임 역사에 큰 이정표를 남긴 스페이스워는 그당시 한 젊은이에게 게임을 통한 사업의 비전을 심어주게 됩니다. 그는 오늘날 '비디오게임의 아버지'이자 아타리(ATARI)를 창시한 '놀란 부쉬넬(Nolan Bushnell )'이었습니다. 그가 대학가에서 발견한 '스페이스워'는 게임 산업의 서막을 알리는 새로운 신호탄이었습니다.
      
    60년대말 아니면 70년대초 였을까. 스탠포드 대학 학생 회관을 돌아다니고 있었을 때, SF소설에서나 등장할 법 같은 기계를 발견했다. 이는 핀볼 게임 기계가 아니라 바로 전자 게임이었다. 외관상 TV 스크린에 단추 몇 개만 달렸있던 그 게임기는 사실, 스페이스워(Spacewar!)였다. 초기 모델의 레버 대신 버튼으로 바껴 있었고, 태양의 유무를 설정하는 옵션이나, 중력에 관한 옵션등 여러 기능이 추가되어 있었다. 내가 여름 초에 친구 스티븐과 주변의 방해 없이 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지만,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는 기계 주변에 무려 6겹의 많은 구경꾼들로 몰렸고, 여러 위성 모니터를 연결해서 플레이 하는 모습을 함께 구경하곤 했다.

    이따금씩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유타 대학교에서 '놀란 부쉬넬'이 스페이스워를 처음 보자마자 게임사업의 비전을 발견한 것을 나 역시 함께 발견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어있을까? 이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이정표였던 셈이다.[각주:5]

    -러셀 드마리아(RDM)
     
      
      
      
      

     
      
    [참고 문헌]

    High score!: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http://en.wikipedia.org/wiki/Spacewar!
      
    1. 사실 이 부분은 현재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테니스 포 투의 디스플레이가 CRT가 아닌 오실로스코프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뚱뚱한 시가 모양처럼 생겼다고 Wedge 라는 이름을 붙이고, 바늘처럼 얇은 튜브 모양이라고 Needle 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본문으로]
    3. 스티브 러셀과 동료들은 게임의 배경을 다시 프로그래밍 하고 나서 농담 삼아 '비싼 천문관'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당시 이 컴퓨터는 가격이 $120,000로 엄청난 고가의 기계였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4. High score!: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p12) [본문으로]
    5. High score!: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p1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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