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게임의 역사 (13) 완구회사 닌텐도

2012. 6. 26. 06:52콘솔게임의 역사

    :: 요코이 군페이를 이야기 하지 않고 닌텐도의 역사를 논할 수 있을까? 그는 게임&와치부터 게임보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게임기를 탄생시킨 디자이너이자 '요코이즘'으로 불리는 닌텐도의 DNA를 형성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진은 그의 평전. ::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울트라 핸드 (Ultra Hand)

    전기 공학도생이던 요코이 군페이(横井軍平)는 1965년 닌텐도에 입사합니다. 입사 당시 그의 나이 24세, 닌텐도에서의 첫 업무는 기계 설비의 보수점검이었습니다. 평소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자기만의 장난감을 만들어서 만지작 거리는 취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야마우치 회장의 눈에 든 것도 그의 손재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업무 중에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다 야마우치 회장에게 들키게 됩니다. 충분히 면책을 예상했겠지만 야마우치는 오히려 그의 비범한 손재주를 높이 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만든 장난감은 막대들을 격자로 이어 이음새 부분에 볼트로 조이고 끝 부분에 손잡이와 집게를 달아서 멀리 있는 것도 늘려서 집을 수 있는 재미난 도구였습니다. 야마우치는 회장은 시장성을 예견하고 바로 상품화를 지시하게 됩니다. 이 장난감은 1966년에 울트라 핸드(Ultra Hand)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고 폭풍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개당 800엔의 상대적인 고가품이었지만, 대중매체 광고가 나가면서 그해 크리스마스-연말 시즌까지 120만개의 판매량를 달성합니다. '오락(Entertainment)'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완구 업체로서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 일본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울트라 핸드는 큰 인기를 얻는다. 사진은 잡지 광고와 제품 패키지 ::

    닌텐도의 신 성장 동력원 '연구개발부'

    울트라 핸드의 성공에 힘입어 야마우치 회장은 닌텐도에 연구개발부를 꾸려서 새로운 완구 사업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당시 총무부장이던 이마니시 히로시를 새 사업부의 수장으로 임명하고 요코이 군페이를 중축으로 장난감 개발을 시작합니다. 이 드림팀 사업부는 기대만큼 많은 히트 제품들을 만듭니다. 울트라 핸드가 출시된 이듬해인 1967년에는 울트라 머신(Ultra Machine)으로 실내 야구장을 가정용으로 옮겨서 어린이들이 집에서도 안전하게 배팅 놀이를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1971년도에 출시된 울트라 시리즈의 세 번째 제품 울트라 스코프(Ultra Scope)는 1.2Kg에 이르는 무거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아이들이 자기 키보다 높은 찬장 위나 골목의 담장 위를 보고 싶어하는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 울트라 머신(Ultra Machine) ::


    :: 울트라 스코프(Ultra Scope) ::

    :: 닌텐도는 울트라 머신 (왼쪽)과 울트라 스코프로의 연이은 히트로 완벽하게 완구업체로 자리매김 한다. ::

    닌텐도와 광선총 신드롬

    울트라 시리즈를 선두로 러브 테스터(Love Tester)텐빌리온(Ten Billion)과 같은 장난감들을 연이어 출시하면서 완구회사로 발돋움한 닌텐도는 우에무라 마사유키(上村雅之)라는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면서 절정에 다다릅니다. 우에무라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쓰레기장에서 모은 부품을 뛰어난 손재주로 장난감을 만들어 놀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독학으로 산업대학에 들어가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태양전지에 사용되는 감광 반도체를 제조하는 샤프(Sharp)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태양전지 영업을 위해 닌텐도 연구개발부를 찾아서 장난감에 전지를 사용할 것을 권합니다.

    우에무라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재능을 알아본 요코이 군페이는 함께 닌텐도에서 장난감을 만들어보자고 입사를 권유하게 됩니다. 어릴적부터 장난감을 좋아했던 그는 닌텐도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입사했고 태양전지를 이용한 새로운 장난감 개발에 착수합니다.

    :: 우에무라 마사유키(사진 왼쪽)는 닌텐도 엔지니어로 입사 후 광선총으로 히트시키고 훗날 패미콤(NES)을 만들게 된다. 사진은 닌텐도의 마리오 25주년 '이와타 사장이 묻는다' 인터뷰 장면 ::

    그가 개발한 광선총(光線銃)은 울트라 핸드에 이어 완구회사 닌텐도의 상징이 된 제품입니다. 적외선 레이저를 발사하는 장난감 총에 과녁이나 표적이 되는 센서에 맞추면 총에 맞는듯한 굉음과 함께 시각적인 효과가 표현되었습니다. 광선총은 일반 총부터 라이플까지 그리고 스코어 과녁과 건맨(Gun Man), 사자(Lion)등의 표적 과녁 등 다양한 패키지로 출시되었고 2,000~4,000엔에 이르는 고가 제품이었지만 1970년대 초반에 100만대 이상 판매한 닌텐도의 대박 상품이 되었습니다.

    광선총의 성공으로 닌텐도는 경영 실적도 상승하면서 그당시 오사카 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되었고 주가도 급등하게 됩니다. 하지만 광선총이 일본 전역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코이 군페이는 그 당시 일본에서 스키트 사격장 붐이 일어나던 것을 광선총 제품과 응용해서 좀 더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실내 사격장을 고안하게 됩니다.

    :: 광선총 GunMan과 Lion 세트. 표적에는 레이저에 반응하는 작은 센서가 있다 ::

    때마침 일본에 붐을 일던 볼링 거품이 빠지면서 볼링장이 하나 둘 씩 문을 닫던 시기였습니다. 야마우치 회장은 볼링장 레인 끝을 센서와 전광판 스코어로 개조해서 광선총 사격장으로 활용하는 사업 수완을 발휘합니다. 그렇게 1973년에 닌텐도의 광선총 장난감을 이용한 실내 사격장이 개장하면서 세간에 주목을 받게 되었고 볼링처럼 여럿이 함께 즐기는 대전 게임 요소를 갖추던 이 사격장은 심야까지 즐길 수 있는 오락시설로 인기몰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영상투사기법을 활용해서 스크린으로 반응하는 아케이드 게임 와일드 건맨(Wild Gunman)을 출시했고 광선총으로는 최초의 수출 제품이 되었습니다.


    :: 와일드 건맨(Wild Gunman)은 화면의 적이 총을 쏘기 직전에 재빠르게 쏴서 맞춰야 이긴다. ::

    다시 찾아온 위기, 오일 쇼크 (Oil Shock)

    울트라 핸드와 광선총의 성공으로 완구회사로 승승장구 해나가던 중 1973년에 전 세계적으로 오일 쇼크(Oil Shock)가 터지면서 닌텐도에게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쳐옵니다. 불황이 오면 가장 먼저 지갑문을 닫는 분야가 바로 오락(Entertainment) 산업군인 만큼 닌텐도에게 큰 타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광선총 사격장에 과감한 자본을 투입했던만큼 부채를 상환하기 힘겨워졌고, 곧바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다시 찾아온 이 총체적 난국을 닌텐도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참고 자료

    닌텐도 이야기 -김영환 저- <한국경제신문>
    http://blog.beforemar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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