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시드 마이어의 문명 #3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다
2010. 9. 29. 22:47ㆍreview/시드 마이어의 문명
#0 연재를 시작하면서...
#1 마이크로프로즈(MicroProse)와 문명의 탄생
#2 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문명은 단 '한 편' 뿐이었다
#3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다
#4 아무도 예상 못한 신드롬, '문명 하셨습니다.'
#1 마이크로프로즈(MicroProse)와 문명의 탄생
#2 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문명은 단 '한 편' 뿐이었다
#3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다
#4 아무도 예상 못한 신드롬, '문명 하셨습니다.'
시드 마이어(Sid Meier). 그가 오늘날 불세출의 게임 디자이너로 명성을 얻게 되는데는, 단순히 최초로 게임의 타이틀에 개발자의 이름을 집어 넣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만의 게임 개발 철학과 더불어, 개발자들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대게 문명(Civ) 시리즈로만 알려져있는 그의 다른 게임과 게임 철학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 첫 번째 연재분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봅시다. ::
시드 마이어의 애정이 담긴 게임, 해적! (Sid Meier's Pirates!)
첫 번째 연재분에서, 시드 마이어는 어려서부터 세계사와 해적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가 마이크로프로즈를 창업하고 자신의 이름을 게임 타이틀 앞에 붙인 최초의 게임이 바로 해적게임이었습니다. 1987년에 출시된 시드 마이어의 해적!(Sid Meier's Pirates!)은 업계에 복합 장르의 가능성을 열어준 게임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시드 마이어는 게임을 디자인 하면서 많은 장르를 가미했죠. 문명에 비해 플레이 타임은 상대적으로 짧지만, 언제든 다시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 한것이 이 게임의 특징이었습니다.
게임 진행은 16~17세기의 유럽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스페인, 네델란드, 잉글랜드, 프랑스의 4개 국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시작하게 되는데, 각 국가의 해적 스코어를 따내며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KOEI의 삼국지처럼 연도를 선택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각 연도마다 4개 국가의 영향력이 다르기 때문에 선택할 때마다 다른 환경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자유도를 부여해준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국내 유저들에게도 익숙한 KOEI의 대항해시대와 비슷한 방향으로 게임이 진행됩니다. 배를 타고 각 항구를 돌아다니고 보물을 찾거나 해전/육지전 등을 하는 것이 익숙한 게임 방식이죠. 기본 골격은 전략 게임이지만 전투는 턴제 방식의 전략 요소가, 1대1 격투에서 대전게임 요소가, 보물을 찾는 어드벤쳐 요소 등이 복합적으로 첨가되어 있었습니다. 복합 장르의 가능성을 열어준 최초의 게임이 아닐까요? 1
해적!은 PC 플랫폼 외에도 닌텐도의 NES, 세가의 Genesis의 콘솔 버전으로도 각각 출시되며 많은 인기를 얻게 됩니다. 1987년에는 Best Screen Graphics in a Home Computer Game에서 올 해의 판타지/SF 게임 부문에서, 1988년에는 CGW(Computer Gaming Wolrd)로부터 올해의 액션 게임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상을 받게 됩니다. 시드 마이어의 명성은 해적!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리메이크 버전은 보다 더 다양해진 복합 장르 요소를 즐길 수 있다. ::
타이쿤 게임의 시초가 된 레일로드 타이쿤 (Sid Meier's Railroad Tycoon)
시드 마이어는 어린 시절에 모노레일을 가지고 놀던 추억과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로 철강산업이 일어나던 시절의 역사적 배경을 조합해서 새로운 게임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해서 1990년에 출시된 레일로드 타이쿤(Sid Meier's Railroad Tycoon)은 경영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의 한 획을 긋게 됩니다. 각 지역을 철도로 잇고 기차를 만들어서 부를 쌓는 이 게임은 경제적인 개념을 게임에 첨가하여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후로 '타이쿤 = 경영 시뮬레이션' 이라는 공식이 생길 정도로 많은 타이쿤류의 게임을 양산하는 계기가 되었죠.
시드 마이어는 비록 한 편의 타이쿤 게임만 제작하는데 그쳤지만, 이후로 레일로드 타이쿤은 2 PopTop Software에서 라이센스를 구입해서 시리즈를 계승하게 됩니다. 1998년과 2003년에 각각 출시된 레일로드 타이쿤2와 3 및 다수의 확장판들은 시드 마이어가 만든 기존의 게임 디자인을 이어받아 화려한 그래픽과 시스템 보강을 거쳐 타이쿤 매니아 층을 두텁게 쌓아갔습니다.
:: 16년만에 돌아온 타이쿤 게임. 이미지에 있는 아저씨는 어디서 많이 봤는데... ::
신작은 '타이쿤'이라는 타이틀명이 빠졌지만,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답게 경제적인 요소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신규 기술의 선점을 위한 동시 입찰 모드 등이 제공되는 한편, 각 지역과 시대에 따라 주요 산업이 다르게 디자인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유럽 지역에서는 와인이나 맥주, 유제품등의 산업에 특화되었다면 미국 서부지역은 석유와 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한, 멀티플레이 모드와 더불어 맵을 커스터마이징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면서 싱글 플레이 외에도 다양한 재미를 선사하는 점 역시 이 게임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Game Developers Conference 2010 - Day 4 by Official GDC
그의 게임 철학,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다.
사실 시드 마이어의 이름을 달고 나온 게임들은 이외에도 문명의 외전격인 게임들(콜로니제이션, 알파 센타우리, 레볼루션 등)이나, 미국의 남북전쟁을 다룬 게티스버그, 앤티틈, 그리고 EA와 함께 만든 심골프 등 다수의 타이틀이 있지만 짧은 시간에 전부 다 소개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시드 마이어는 매직 더 게더링의 PC게임 버전도 제작한 이력이 있을 정도니까요. (시드 마이어가 만든 게임 목록은 위키백과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시드 마이어가 만드는 게임들에는 접근성이 높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계속해서 몰입하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개발 일선에서 물러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역량과 파이락시스 스튜디오에 정착시킨 게임 철학은 업계에 많은 게임 개발자들과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력과 영감을 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의 게임 철학은, 지난 봄에 열린 GDC 2010 에서 '게임 디자인의 심리학 (Psychology of Game Design - Everything you know is wrong)'이라는 주제로 펼친 강연을 정리해서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 내용이 길기 때문에 대충 스킵해가며 슬라이드에 나와있는 키워드만 보셔도 됩니다.)
대게 많은 게임 개발자 및 디자이너들이 게임을 제작할 때 수학 연산, 정보 등이 게임을 디자인 함에 있어 최고의 미학으로 여겨왔다면 시드 마이어는 게임 디자인에 있어 '심리학(Psychology)'을 앞세웁니다. 모든 게임은 게이머의 경험으로 부터 나와야 하고 게이머의 심리 상태를 잘 파악하는 것부터 게임 디자인이 시작 된다는 뜻이죠.
이번 GDC 강연에서 시드 마이어가 게이머의 심리를 다루는 요소 중에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바로 승자의 모순(The Winner Paradox) 입니다. 어떤 게임이든 밸런스를 조정하고 게임을 디자인 함에 있어, 수학 연산이나 알고리즘, 데이터만으로 해결하려는 접근 방식은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게이머의 심리를 파고들어 적절한 보상과 벌칙이 주어지게끔 난이도를 조정해서 게이머 자신의 실력을 어느 선 이상으로 느끼게끔(착각하게끔) 디자인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또한, 2:1과 20:10의 전투에 대한 결과를 논리적으로 설계해서 어떤 결과든 게이머가 수긍해야 맞겠지만, 게이머의 심리는 2:1로 패배하는 것은 납득(자신이 2)해도, 20:10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어 한다(자신이 20)고 합니다. 이는 게임의 밸런스가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하더라도 게이머가 심리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결코 성공적인 게임 디자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해야할 부분입니다.
그 외에도, AI에 있어서 플레이어와 거의 같은 수준의 정교한 AI를 갖기 보다는 게이머가 적절한 자극과 경쟁의식을 주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정도로만 디자인 하는 것이 좋다는 점이나, 서로에게 기대고 바라는 게 있다는 점에서 개발자와 게이머의 관계를 '사악한 동맹(Unholy Alliance)'이라고 정의하는 등, 이 모든 것들이 게이머가 게임을 즐기고 개발자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심리학적인 접근법에서 나온 정의들입니다.
:: 시드 마이어의 게임 철학은 이 4가지로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
첫 째로 게이머들에게 끊임 없이 흥미로운 결정(Interesting Decisions)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함을 강조합니다. 그의 명언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일테죠. 둘 째로 끊임 없이 배우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3Learning / Progress), 즉 성취욕을 가지도록 디자인합니다. 셋 째로는 지속적으로 다음 단계를 기대할 수 있게끔 (One More Turn) 이끌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든 게이머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Replayability) 도와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명 시리즈를 즐겨온 분들이라면 이 4가지가 절묘하게 게임 안에 녹아있음을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이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드 마이어가 말할 때 강한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이런 원칙과 철학들을 적용시켜서 문명과 같은 훌륭한 게임들을 내놨기 때문일겁니다.
:: 이제 알았으니 행하는 것은 게임 개발자들의 몫 ::
어릴적 자신의 꿈을 담아 게임으로 형상화하고, 그렇게 탄생된 게임을 통해 게이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기를 원하던 시드 마이어. 그 누구보다도 게이머의 마음을 깊이 알기위해 노력해왔고 게이머의 심리와 숨겨진 욕구를 찾아 문명과 같은 흡입력있는 게임으로 탄생시킨 열정이 오늘날 그를 위대한 게임 디자이너로 있게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탄생할 그와 파이락시스의 게임들이 게이머들에게 어떤 웅대한 여정을 이어가게 해줄 지 기대해봅니다. =)
[참고 자료]
http://www.gamespot.com/news/6253256.html
http://www.gamespot.com/pc/strategy/civilizationv/video/6253529
http://www.sidmeiersrailroads.com/
http://www.2kgames.com/pirates/pirates/home.php